“한 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은 새로운 기술을 얼마나 만들어내느냐에 달려있고, 이는 결국 기초과학 연구가 얼마나 잘 이뤄지는지가 중요합니다.”
국제반도체물리학술대회(ICPS 2010) 참석차 방한한 조레스 알페로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과학센터장은 27일 기자회견에서 “기초과학 연구 수준이 한 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을 결정한다”며 “기초과학 연구가 결국 응용연구의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알페로프 센터장은 200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반도체물리학분야 전문가로 ‘러시아판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스콜코보 첨단기술단지 건설의 총괄 지휘를 맡고 있다. 그는 1990년대부터 대우, 삼성 등 한국 대기업들과 LED·레이저 등 분야에서 활발한 협업을 펼친 ‘지한파’ 과학자이기도 하다.
알페로프 센터장은 한국의 과학기술 발전 수준을 높이 평가하며 “이미 반도체 산업분야에선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로 발돋움했고, 반도체물리 학술 분야도 높은 수준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다른 나라의 기술을 도입하고 벤치마킹하는 식의 발전으로는 한 차원 더 높은 발전으로 나아가기는 힘들다”고 강조했다.
알페로프 센터장은 러시아의 경우를 예로 들며 “러시아가 구소련 시절 우주·물리분야 등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외려 미국 등 다른 선진국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하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후 정치적 문제에 휩쓸려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투자가 소홀해지면서 급격한 과학기술 경쟁력 저하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며 외부의 요인에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기초연구분야에 투자할 것을 주문했다.
이공계 인력 양성문제에 대해선 “삼성, LG 등 우수한 기업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에서 이공계 기피 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다”며 “국제 사회에 한국 과학기술의 위상을 한국의 젊은이들이 제대로 인식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의 실리콘밸리의 경우도 유수의 기업과 함께 기초연구에 높은 성과를 낸 스탠퍼드나 버클리와 같은 대학이 있었기에 그토록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라 강조했다.
한편 알페로프 센터장은 이날 황창규 지식경제부 R&D전략단장과 만나 한국과 러시아 간 과학기술 분야 협력을 강화하고 특히 스콜코브의 한국 기업과 연구소 유치 등에 대해 논의했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