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자동차 때문이다. 이 많은 세금을 내야하는 것도,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에 중독된 것도, 그 아름답던 마을이 사라진 것도, 노동자가 자본의 도구로 전락한 것도, 인간이 이처럼 소외된 것도 알고 보면 모두 자동차 때문이다.”
저자에게 자동차는 `해악과 파괴의 역사` 그 자체다. 자동차가 가져온 이동성은 저주에 가깝다. 중세 도시가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은 도보로 이동 가능한 짧은 길과 지역 내 유기적 연결망 덕분이었다. 거기에선 개인과 공동체의 이익이 조화를 이루고 모두가 공공장소를 평등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넓은 도로가 생기고 자동차가 질주하면서 지역의 특성과 다양성이 파괴됐다. 지역사회 복지 향상에 기여하던 소기업은 도로를 타고 파고든 거대 다국적기업에 순식간에 무너졌다. 주민은 지역에서 생산된 다양한 먹을거리 대신 대량 생산된 식재료를 구입한다. 자동차와 도로 탓에 인간이 다양한 삶의 기회를 제한당한 채 똑같은 모습으로 살게 됐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동차가 인간 사회의 전통적 관계를 단절시키고 있지만 권력층에는 기반을 공고히 해주는 유용한 도구라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또 늘어만 가는 교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들도 쓸모없는 것으로 폄하한다. 선진국들은 심각한 교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로를 건설했지만 오히려 교통량을 늘리는 결과를 낳았다. 통행료 부과로 교통량을 줄이려 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환경보호 대책도 힘을 쓰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논리적 비약과 궤변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는 이 책이 의미 있는 것은 늘 아무렇지 않게 이용하고 바라봤던 것을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재해석, 재평가했다는 점이다. 다행히 책은 자동차를 비판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자동차가 가져온 끔찍한 난제를 직시하고 지난 200년의 자동차 역사와는 다른 생산적인 자동차 문화를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동차가 필수 교통수단이 된 지금 이를 뿌리치고 살기란 쉽지 않다. 깊은 논의를 통해 인간다운 삶의 현장을 복원하자고 저자는 용기 있게 말한다.
헤르만 크노플라허 지음. 박미화 옮김. 지식의날개 펴냄. 1만3000원.
황지혜기자 goti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