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최대 가속기 가동중인 CERN을 가다 上 ◆
스위스 제네바 도심에서 프랑스 국경 쪽으로 10㎞ 정도 가면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에 닿는다.
이 연구소는 세계 최대 입자가속기인 거대강입자가속기(LHC, Large Hadron Collider)를 가동하며 입자물리학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994년부터 29억달러를 투입해 2008년 완공한 LHC는 약 137억년 전 우주를 탄생시킨 빅뱅(대폭발)의 비밀을 밝혀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거대 장치. 총 길이 27㎞에 달하는 LHC 터널은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을 넘나들며 지하 100m 아래 묻혀 있다. 지하 깊이 자리한 만큼 이 터널에서 거대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어도 주민은 집이나 사무실 밑으로 터널이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다.
5층을 넘지 않는 나지막한 연구동들이 여기저기 모여 있어 겉으로는 별다른 게 없어 보이지만 연구소 구내식당에서 노벨상 수상자들을 마주칠 수 있을 만큼 세계적 과학자들이 모인 곳이다. 특히 이 연구소는 1980년대 이후 입자물리학의 중심을 미국에서 유럽으로 옮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만 7명을 배출했다.
전 세계에서 온 객원연구원, 방문연구자 등 시설 사용자가 연 1만명을 넘어섰으며 LHC의 본격적인 가동으로 시설 사용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1만명은 전 세계 입자 물리학자 절반이 넘는 숫자다. 또 국내 과학자 60여 명도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유재훈 텍사스주립대(알링턴) 물리학과 교수는 "미국 과학자들도 입자물리학을 제대로 연구하려면 CERN에 와야 한다. 미국 대학에서도 `젊을 때 와서 밑바닥부터 배워야 연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 수 있다`는 말까지 한다"고 전했다. 방문연구원으로 있는 박인규 서울시립대 물리학과 교수는 "많은 나라에서 온 다양한 연구원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연구소 분위기가 개방적"이라고 설명했다.
또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제품을 테스트하려고 CERN과 손을 잡고 있다. 예컨대 HP는 프린터와 데스크톱 컴퓨터를 주로 공급해 테스트하고 있고 IBM은 대용량 저장장치를 CERN 수요에 맞춰 개발해 공급한다.
수많은 과학자가 모여 기초연구를 하다 보니 부수적인 성과만으로 세계 역사를 바꾼 일도 일어났다. 1989년 CERN의 젊은 연구원은 과학자들이 쉽게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인터넷의 기초인 `월드와이드웹(WWW)`을 만들어냈다.
CERN은 2차세계대전 뒤 유럽의 인재들이 미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유럽 12개국이 핵과 입자물리학 연구를 목적으로 설립해 1954년 준공한 공동연구소다. 현재는 LHC 가동으로 주목을 받는다. LHC 터널에서는 2개의 수소 양성자 빔(beam)이 각각 반대쪽으로 진행하다 서로 충돌하면서 1000만분의 1초라는 짧은 시간에 빅뱅 때와 비슷한 엄청난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이때 수억 개의 충돌 파편을 여러 개의 초정밀 검출기로 추적하고 데이터를 분석한다. 검출기는 CMS, ATALAS, ALICE 등 총 6개가 있다. 국내 연구진은 주로 CMS 검출기 연구팀에 소속돼 있다. 많은 과학자들이 LHC 가동과 실험을 통해 존재를 밝히려고 주목하는 게 힉스(Higgs)입자다.
우주탄생을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이론인 빅뱅이론은 표준모형을 근거로 한다. 이 모형이 성립하려면 모든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입자가 존재해야 하는데 아직 실험적으로 발견되지 못했다. 이를 확인하면 우주가 생성된 빅뱅 당시 기체 잔해가 은하, 항성, 행성 등을 구성했다는 가설을 입증하고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을 완성할 수 있게 된다.
롤프-디터 호이어 연구소장은 "인류의 우주에 대한 이해는 현재 5% 수준에 불과하지만 힉스입자를 찾으면 30%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LHC는 2008년 9월 10일 첫 실험을 했으나 결함이 생겨 9일 만에 가동을 중단한 바 있다. 14개월 만인 작년 11월부터 다시 충돌실험을 실시했으며 올 초부터 에너지를 7TeV(각 3.5TeV 에너지의 양성자 빔 충돌)까지 올렸다. 2013년 최대 에너지인 14TeV까지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스위스 제네바 = 매일경제 심시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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