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0년간 국가 R&D를 주도하던 정부출연연구기관이 `뒤웅박` 신세로 내몰렸다. 11년 만에 이루어지는 출연연의 거버넌스(지배구조) 개편이 난맥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출연연 거버넌스 개편에 대한 큰 그림은 나왔지만 여전히 정부는 논의의 핵심인 `예산권`과 `출연연 국과위 이관`에 대해 똑떨어진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지식경제부의 부처 이기주의 때문이다.
청와대 측에서도 이를 조정하고 여론을 수렴한다는 이유로 지난주에 이어 2일과 3일 대덕을 찾아와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등 기관장을 비롯한 현장 연구원을 직접 만나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 자리에서 현장 연구원들과 기관장들은 한결같이 정부의 이기적인 태도에 대해 지적했다고 한다. 국가 R&D를 위한 진정성이 있기나 하냐는 것. 특히 양 부처로 출연연을 나누는 과오와 예산권이 없는 허수아비 국과위에 대해 상당수의 지적이 있었다는 것이 주변 전언이다.
출연연이 선진시스템으로 가려면 국가 R&D 예산의 편성이 전문가 그룹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비전문가인 각 부처의 실무자들이 예산을 마음대로 주물러선 안 된다는 것도 자명하다.
실제로 담당부처 실무자가 출연연에 직접 전화해 특정 과제가 선정되도록 요구하는 일은 이제 관례로 여겨질 정도다. 어처구니없는 횡포지만 예산에 관한한 을의 입장인 출연연에서는 모두 수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러한 구조를 깨자는 것이고, 바로 지금이 최적의 시기다. 이 기회에 출연연을 국가R&D의 주춧돌로 거듭나도록 바람직한 초석을 깔자는 것이 출연연 종사자 모두의 소망이다.
옷의 첫 단추를 잘못꿰면 모든 단추가 삐딱선을 탈 수밖에 없다. 출연연발전민간위원회 측의 말대로 50년을 내다본 출연연 거버넌스를 만들어야 한다. 과학기술계가 출연연 개편 방향에 신경의 날을 세우고 있는 이유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