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대 가속기 가동중인 CERN을 가다 (下) 호이어 소장 인터뷰

"한국이 구상하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는 아시아의 기초과학 거점으로 과학기술 분야 국제경쟁력을 키우는 최대 기회(big chance)가 될 것입니다."

세계 최대 입자가속기를 운영해 세계입자물리학의 메카로 부상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롤프디터 호이어 소장은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중이온가속기 등을 설치하는 과학비즈니스벨트는 한국만의 시설이 아닌 아시아를 위한 연구시설이 돼야 할 것입니다. 또 과학자들이 쉽게 오가면서 공동으로 협력할 수 있는 운영체계와 소프트웨어도 만들어야 합니다."

호이어 소장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12개국이 공동으로 참여해 건설한 CERN은 중립지역인 제네바를 거점으로 삼고 점차 확대돼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을 넘나들고 있으며 과학기술 연구에 있어 교류와 연합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이미 한국을 세 차례 방문했다고 소개한 호이어 소장은 한국의 과학벨트 조성계획이나 중이온가속기 설계안에 대해 많은 지식과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호이어 소장은 "한국은 과학기술 분야에 아주 열정적인 인재가 많고 또한 산업과의 연계도 잘 돼 있다"며 "다만 국제적인 공동연구와 협력을 더욱 중요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한국 몇몇 지역을 방문했는데 연구소들이 밀집해 있는 대전 대덕 주변은 과학벨트를 조성하기에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며 "여러 연구시설 가운데 K-STAR(한국형 핵융합 연구장치)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호이어 소장은 또 "한국이 지으려는 중이온가속기 개념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며 "이 가속기는 기초과학 연구뿐 아니라 의약품 개발 등 여러 가지 응용연구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국 과학벨트가 난항을 겪고 있는 것과 관련해 기초과학이 성과를 거두려면 포퓰리즘보다 정치인들의 장기적 안목과 지원이 절실함을 강조했다.

"한국은 대통령을 5년마다 뽑는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기초과학 분야에서 5년 동안 이룰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어요. 요즘 사이언스 분야는 대부분 거대 프로젝트가 많기 때문에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정치인들은 기초과학의 타임스케줄을 이해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호이어 소장은 CERN에서 세계 처음으로 월드와이드웹(WWW)이 탄생한 예를 들면서 "기초연구는 언제 어디서 커다란 성과를 낼지 알 수 없다"고 했다.

"CERN은 우주생성의 근원을 밝혀줄 입자를 찾는 지식찾기(Knowledge game)에 나서고 있지만 또한 다양한 응용기술의 산실이 되고 있어요. 가속기의 경우 암치료에도 활용됩니다. 이를 위해 수많은 국가의 과학자들이 함께 연구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환상적인 일입니다."

그는 또 "2013년이면 거대강입자가속기(LHCㆍLarge Hadron Collider)의 최대출력(14Gev)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우리 연구소는 이른바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Higgs)입자를 찾아내고 우주탄생 비밀을 밝혀낼 것"이라고 자신했다.

"물질에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입자를 발견하면 질량이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류의 우주에 대한 이해는 현재 5% 수준에 불과하지만 이를 통해 30%까지 높아질 수 있습니다."

CERN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우수한 인재들이 미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유럽 12개국이 핵과 입자물리학 연구를 목적으로 1954년 설립한 공동연구소다.

특히 1994년부터 29억달러를 투자해 2008년 완공한 세계 최대 LHC는 우주를 탄생시킨 빅뱅(대폭발)의 비밀을 밝혀줄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많은 과학자가 LHC의 충돌실험을 통해 존재를 밝히려고 주목하는 게 힉스입자다. 우주탄생을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이론인 빅뱅이론은 표준모형을 근거로 한다. 표준모형이 성립하려면 모든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입자가 존재해야 하는데 아직 실험적으로 발견되지 못했다. 표준모형에서는 입자가 합쳐져 만들어진 물질에 어떻게 `질량`이라는 성질이 생겨났는지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물리학자들은 힉스입자가 다른 입자들에 질량을 부여하고 사라졌다는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제네바 = 매일경제 심시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