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근 비대 질환자인 40대 A씨는 혈압이 갑자기 상승할 때마다 겁이 난다. 혈압이 심근 비대로, 다시 심부전으로 이어져 언제 심장이 멈출지 모르기 때문이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도 심근이 비대해지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경우는 안전하다. 왜 그럴까? 유전체들 사이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우리의 몸 속에서 생체 구성 요소들이 벌이는 상호작용의 체계적인 분석을 통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최근 이처럼 생명 현상에 대해 데이터 통합 기술을 적용해 총괄적으로 연구하는 `시스템 생물학`이 첨단 생물학의 핫 이슈로 부상했다. 미래 과학기술의 발전상을 논하면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맞춤형 의학`도 시스템생물학의 발전에 힘입어 보다 빨리 현실로 다가올 전망이다.
◇독립 연구에서 시스템으로=지금까지의 생물학적 연구는 관측 가능한 생명 현상에 대해 각각 독립적으로 연구가 진행됐다. 시스템 생물학은 말 그대로 생체 구성 요소들의 상호 작용을 모델링을 통해 시스템적으로 분석해 주요 생명 현상의 본질적 특성을 구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단백질체·전사체·대사체·위치정보 등 유전체의 정보에 합성 생물학 제어기술이나 네트워크 분석 모델링 기술, 시스템 변이 기술을 접목시켜 우리 몸의 시스템을 계량적으로 분석한다.
단순히 생명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기능과 상호작용을 개별적으로 연구하는데 그치지 않고 각각의 데이터를 통합, 이들이 총체적으로 어떤 시스템 속에서 움직이는지 원인을 밝혀내는 것이다.
◇가상세포가 실제 세포 예측=최근 이상엽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교수팀은 컴퓨터 시스템으로 실제 세포를 정확히 모사할 수 있는 가상세포 방법론을 개발해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화학물질이나 바이오연료 등에 이용되는 미생물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개량 연구하려면 엄청나게 복잡한 생명체의 대사를 체계적으로 파악해야 하는데, 컴퓨터를 활용한 시스템 생물학이 이를 해결했다.
수천, 수만가지의 경우의 수를 실제로 모두 실험하기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방법론이 더욱 유용하다.
최근 생물학 분야에서 고처리량 기술의 발달로 게놈(genome), 전사체, 단백질체 등의 방대한 데이터가 축적됐다. 시스템 수준에서 생명체의 대사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이러한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가상세포 시스템과 그 응용 기술이 한층 주목받는 이유다.
특히 이상엽 교수팀이 개발한 방법론을 통해 얻어진 가상세포 예측 결과들은 실제 세포 실험으로 측정된 결과와 비교해 정확도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연구에 참여한 박종명 KAIST 생명화학공학과 연구원은 “기존에도 가상세포 방법론이 몇 가지 발표됐지만 이번 방법론은 다양한 환경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데다 게놈 염기서열이 분석된 모든 생명체에 적용이 가능해 산업적·의학적 응용을 위한 미생물 개발에 널리 활용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치료제 개발 새 패러다임=연구자들은 시스템생물학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질병 타깃 발굴 및 맞춤형 의약 시대가 활짝 열릴 것으로 기대했다. 생명 시스템에 대한 맞춤형 설계도 가능해진다.
광주과학기술원의 김도한 교수(생명과학과)팀에서 막바지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칼슘대사 시스템 연구`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상엽 교수팀이 미생물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한다면 김 교수팀은 고등생명체에 대한 연구에 집중해왔다.
칼슘 대사 시스템은 유전자, 단백질, 세포 전반에 걸쳐 유기적으로 상호 작용하고 그 항상성이 고등 생명체의 생존에 영향을 준다. 칼슘 신호 전달에 이상이 생기면 다양한 질병이 발생하기도 한다.
김 교수팀은 시스템 생물학으로 칼슘대사 및 심근 유전자 네트워크를 분석하는가 하면 심근 비대증 주요 신호전달계 모델링 등 주요 연구 성과를 내놨다.
2012년까지 4단계 연구로서 다층적 네트워크 분석을 통한 칼슘대사 기전을 구명하고 심근비대 및 관련 질환 치료제 개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한다는 목표다.
김도한 교수는 “컴퓨팅 분석이 필요한 모든 생물학 분야에서 시스템 생물학의 뒷받침이 필수불가결해질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IT와 BT를 융합한 시스템 생물학 분야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만 현재까지 국가적인 연구개발 지원이 제한적이라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