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디스플레이용 후방산업 국산화의 역사는 미국·일본·독일 등 전통의 부품·소재 강국 극복의 과정이었다. 독일 머크가 LCD용 액정을 개발한 지 100년이 넘은 것에서 알 수 있듯, LCD 산업이 태동하기 훨씬 이전부터 부품·소재 강국들은 관련 제품에 대한 연구개발(R&D)을 진행하고 있었다. 편광판·프리즘시트 및 이중휘도향상필름(DBEF) 대체용 제품 등 LCD용 광학필름은 이처럼 선진국에 비해 한참 뒤떨어진 부품·소재 산업 기술력을 성공적으로 따라잡은 사례로 평가된다. 편광판의 경우 시장을 과점하고 있던 일본 업체들을 제치고 세계 1위 기업이 탄생하는 쾌거를 이뤘다. 프리즘시트도 연매출 수천억원에 이르는 스타 중소기업을 여럿 탄생시키며, 대표적인 효자 산업으로 등극했다.
◆일본 넘은 편광판, 기초 소재 국산화는 영원히 풀어야 할 `숙제`=LCD용 편광판은 노트북PC·모니터·휴대폰 등에 사용되는 LCD 모듈의 핵심 소재다. 두께가 머리카락 두세 가닥 정도에 불과한 0.3㎜의 초박막 필름으로 내부에는 여러 장의 기능성 필름이 적층돼 있다. 광학·물리학은 물론이고 점착제·정밀코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편광판 시장이 고성장·고수익 시장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이 선뜻 진입하지 못하는 것은 이처럼 높은 기술장벽 탓이다. 국내 업체들의 경우 후발업체로 출발했지만 지속적인 R&D 투자에 힘입어 2000년대 초반, 드디어 일본 업체들과 대등한 제품군을 구비할 수 있게 됐다.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LG화학은 지난 1분기 기준, 편광판 시장 점유율 32%를 기록하며 4분기 연속 1위를 달성했다. 2위 일본 니토덴코와, 역시 일본 업체인 3위 스미토모와는 7~8%의 점유율 격차를 보여 여유롭게 선두 자리를 차지했다. 또 다른 국산 편광판 업체인 에이스디지텍도 모니터용 편광판 점유율 16%로 관련 분야 2위, 노트북용 편광판 시장에서는 15%로 세계 3위를 차지했다. 이 회사는 최근 중소형 시장을 넘어 TV용 편광판 시장 점유율 확대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반면에 업체들이 편광판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기록 중인 이면에는 핵심 소재 대부분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는 한계가 항상 지적돼왔다. 편광판 재료비 중 70%를 차지하는 트리아세테이트셀룰로스(TAC)필름·폴리비닐알콜(PVA) 등은 전량 일본에서 수입해오는 실정이다. 국내 업체들이 편광판 생산량을 늘릴수록 일본 TAC·PVA 업체들로부터 구매하는 소재의 양도 따라서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효성이 지난 2007년 TAC 필름 시장 진출을 선언한 이래 지난해까지 약 1300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직 편광판 업체로 양산 공급하는 데 성공하지는 못했다. 효성은 최근 열린 기업설명회에서 하반기 TAC 분야서 본격 매출이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여러 난관이 남아 있는 게 사실이다. 윤보영 효성 재무본부 상무는 "일부 제품은 납품을 하고 있지만, 승인 문제로 상당히 (사업 추진이)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국내 TAC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일본 `후지`사가 강력한 협상력을 바탕으로 국산 업체의 TAC 시장 진출을 견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하반기 양산 공급도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후지가 국내서 워낙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보니 고객사인 편광판 업체들이 도리어 후지사의 눈치를 보는 형국”이라며 “편광판 업체들이 원자재 수급처 다각화를 좀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휘도향상필름, 3M 극복의 역사=편광판이 `극일(克日)`의 과정이었다면, 프리즘시트와 DBEF 대체용 광학필름 시장에서는 특허를 이용해 관련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미국 3M을 넘어서야만 했다. 불과 2006년까지 3M 천하였던 프리즘시트 시장은 2007년, 국내 업체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국산화 비율이 급격히 높아졌다. 특히 다른 부품·소재 산업이 대기업 계열사들의 천하라면, 프리즘시트 시장에서는 전문 중소기업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신화인터텍·미래나노텍 등 LCD용 광학필름 전문업체들은 올해 연간 매출이 6000억원에 달할 정도로 건실한 중견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외에도 중소형 프리즘시트 시장에서 3M의 점유율을 넘어선 엘엠에스는 지난해 3M이 제기한 특허소송에서 승소하기도 했다. 시장은 물론이고 기술에서도 3M을 압도한 셈이다.
프리즘시트 분야서 3M을 뛰어넘은 업체들은 이 경험을 살려 DBEF 대체형 제품 양산을 서두르고 있다. DBEF는 LCD용 광학필름 중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 중 하나지만 3M 특허에 막혀 최근까지 국산화율 `제로(0)`를 면치 못했다. 토종 업체들은 3M 특허를 회피할 수 있는 방법으로 관련 시장 공략을 시도 중이다.
첫 테이프는 신화인터텍이 끊었다. 이 회사는 지난 2분기부터 DBEF 대체형 제품인 `고휘도액정복합(CLC)` 필름을 삼성전자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CLC 필름은 전통적인 코팅 및 단백질계 액정을 단일층의 적록청(RGB) 구조로 적층하는 기술을 적용했다. 3M 특허를 원천적으로 피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최근에는 직물과 필름을 코팅 처리하는 라미네이팅 기법을 이용, `고휘도편광필름(WRPS)`을 개발한 웅진케미칼도 삼성전자에 양산 공급을 시작했다. 미래나노텍 역시 DBEF 대체형 필름인 `NF시트`를 오는 4분기부터 양산, 올해 이 분야에서 6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제 편광판, 휘도향상필름 등의 기능을 통합한 원시트 개발도 진행 중이다. 제일모직, LG화학 등이 기술개발에 나섰거나 검토 중이다. 당분간 현재의 기능성 필름 등이 공존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통합 필름이 대세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안석현기자 ahngija@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