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투더퓨쳐<20>]싱어의 재봉틀 특허 출원

[백투더퓨쳐<20>]싱어의 재봉틀 특허 출원

대부분의 사람들은 옷을 산다. 직접 옷을 짓거나 맞추는 경우도 있지만 소수다. 산다는 행위에는 대량생산으로 만들어진 물건을 화폐로 교환한다는 산업혁명 이후의 경제논리가 깔려있다.

우리나라에선 `미싱`으로 더 많이 불렸던 재봉틀은 산업혁명을 이야기할 때 증기기관, 제련기와 함께 중요한 발명품으로 꼽힌다.

1750년대 독일의 찰스 바이젠틀이 바늘구멍이 있는 바늘을 사용해 재봉틀의 시초를 만든 후 1790년 영국의 토마스 세인트에 의해 기계화가 시도된다. 이후, 프랑스의 시몽, 바세레미 시모니 등을 거치며 진화한 재봉틀은 미국의 아이작 메리 싱어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대중화했다.

1851년 8월 10일 싱어가 `직립 8자형 벨트 재봉틀`의 특허를 내면서 재봉틀은 본격적으로 가정과 공장에 보급되기 시작한다. 이후 재봉틀은 HL형 · ZU형 · 프리암형 등으로 개발돼 미국과 러시아의 산업혁명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에서는 대량생산을 꿈꾸던 미국의 기성복 업자들은 재봉틀을 도입해 상품의 제작 및 판매를 위한 대규모 공장을 운영했다. 재봉틀의 수요가 급증하자 러시아에서는 산업혁명을 위해 황제가 싱어 재봉틀 제작 공장을 모스크바에 설립하기도 했다.

재봉틀은 봉제 기술의 발달에도 영향을 미쳐 의상 디자인 양식에도 큰 변화를 일으켰다. 손바느질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터커와 주름장식 같은 요소가 의상 디자인에 포함돼 다양한 표현이 가능해졌다.

싱어 재봉틀의 원래 아이디어가 하루 종일 삯바느질에 매달리는 아내를 돕기 위해 미국의 엘리아스 하우가 창안한 것임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1845년 하우는 자신의 재봉틀을 팔기 위해 설명회까지 열지만 한 대도 팔지 못했다. 싱어의 재봉틀이 성공을 거두자 특허 소송 제기를 건 하우는 로열티를 받는 조건으로 싱어와 동업자 관계로 발전한다.

싱어의 재봉틀이 선보인 지 150년이 지났다. 좀 더 쉬운 바느질을 위해서 고안된 재봉틀은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의 삶과 호흡하며 옷뿐만 아니라 그에 얽힌 이야기도 만들어왔다.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 마하 트마 간디는 재봉틀을 “지금까지 발명된 몇 안 되는 쓸모 있는 물건 중 하나”라고 말했고, 박경리 선생 역시 재봉틀로 삯바느질이라도 할지언정 문학에는 타협은 없다는 각오로 토지를 완성할 수 있었다. 1970년대 우리나라 산업 발전 시기에도 수많은 여성들이 재봉틀 앞에 청춘을 받쳤다.

재봉틀도 자동화되고 첨단 기술이 더해지면서 점점 사람이 그 앞에 앉는 일은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재봉틀 앞에 쓰인 서글픈 이야기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수운기자 per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