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유가, 1ℓ에 6400원.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전 세계의 중산층이 급증했고, 석유의 수요도 그만큼 늘어났기 때문이다. 모자란 석유를 공급하기 위해 보다 멀리 그리고 깊은 곳을 탐사해야 한다.
시추비용도 예전 같지 않다. 석유 생산량이 어느 순간에 최고점을 기록하고, 이후 절대적 공급부족으로 이어지는 피크오일(Peak Oil)이 지난 지 한참이다. 자동차의 크기도 줄어들었고, 거리의 자동차 수도 급격히 감소했다. 사라진 항공기로 하늘은 텅 비어있다. 사막에 세워진 도박의 전당, 라스베이거스가 파산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교외의 월마트를 이용하지 않는다. 중국의 값싼 제품은 유통비용 증가로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일본인들도 항공기로 공수하던 신선한 참다랑어 초밥을 더 이상 맛볼 수 없다. 크리스토퍼 스타이너가 지은 `석유종말시계($20 Per Gallon)`에 나오는 미래의 가상 시나리오다.
이 책은 석유 공급부족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매우 구체적이며, 사실적인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의 일상을 중심으로 기술했지만 에너지 과소비국가인 한국의 일상과 거의 같다.
우리는 찐득한 검은 액체가 만들어내는 달콤한 제품을 입고, 먹으며 살아간다. 따라서 이러한 조정기에 석유에 의존하는 우리의 일상은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 고통을 최소화하려면 보다 혁신적인 삶의 변화, 사고의 변화가 필요하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는 법. 인터넷혁명이 새로운 기회의 창이었던 것처럼 석유종말시계는 새로운 블루오션을 제공할 것이다. 피크오일 이후 출구전략을 준비하는 자만이 새로운 기회와 세상을 거머쥘 것이다. 신에너지와 신산업 창출로 우리의 삶도 재구성될 것이다. 산업혁명, 인터넷혁명에 이어 또 다른 기술혁명이 기다리고 있다. 그중 하나가 교통혁명이요, 철도 르네상스인 것이다.
이 책도 미래 사회의 교통수단으로 고속철도를 선택한다. 불을 마시는 제트엔진도 아니요,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자동차도 아닌, 청정전기열차에 의한 패러다임 변화에 주목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이 출판된 2009년에 미국 오바마 정부가 출범했다. 동시에 오바마 정부는 경기부양책 및 교통문제 해결책의 일환으로 고속철도 건설에 착수한다. 마치 석유종말시계를 예감이라도 한 것일까.
경기부양책인 ARRA(American Recovery and Reinvestment Act)의 일환으로 초기 80억달러의 착수금과 최소 5년간 매년 10억달러를 고속철도 건설에 투자할 계획이다. 고용과 녹색산업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복안이다. 이미 유럽연합(EU)은 고속철도 건설로 인해 유럽통합이 가속화되고 있다. 유럽 고속철도 수송량은 10여년 동안 3배 이상 증가했으며, 고속철도 건설은 유럽연합 정책 프로젝트로 진행되고 있다. 이로 인해 유럽 1인당 석유 사용량은 미국의 절반수준까지 떨어졌다. 중국도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기반으로 고속철도 네트워크를 완성해 가고 있다. 관공서 소재지와 중대형 도시 간의 쾌속여객수송노선을 구축하여 4종4횡의 1만2000㎞ 고속철도 건설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하나의 중국 만들기 프로젝트인 셈이다.
전 세계는 이미 피크오일에 대비한 교통혁명이 시작되고 있다. 철길은 바로 그 미래로 가는 길이다.
나희승 한국철도기술연구원 기획부장 hsna@kr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