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8월 11일 기아나 우주센터. 수리남과 브라질 사이에 위치한 프랑스의 `레지옹(해외 영토)`인 이 곳에서 아리한 4호가 발사됐다. 여기에는 3톤 무게의 육중한 미국 해양관측위성 토펙스 · 프랑스의 S80/T 인공위성과 함께 35.2㎝×35.6㎝×67㎝ 크기에 성인 남성 평균보다 작은 42㎏ 무게의 초소형 위성이 함께 실렸다. 대한민국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다. 우리별 1호 발사로 세계 22번째 인공위성 보유국이 된 한국은 본격적인 우주개발 시대를 열었다.
우리별 1호는 축적 및 전송통신실험(Store & forward packet communication), 지구표면 사진촬영 실험(해상도 2km, 400m), 우리말 방송실험, 그리고 우주방사선실험 등을 수행할 수 있는 장치를 탑재했다. 특히 아마추어 무선중계기를 탑재해 전 세계 아마추어 무선사들이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남극 세종기지에 근무하던 한 연구원이 아마추어 무전기로 우리별 1호를 이용했다고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설계 수명은 5년이었지만 이보다 두 배가 긴 12년 동안 작동하면서 2004년까지 `장수`했다.
우리별 1호는 영국 서리대학교의 기술 지원 아래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와 한국항공우주연구소에서 파견된 유학생들과 연구원들이 영국에서 제작했다. 아직 우리 기술로 위성 개발을 주도할 능력이 그 때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별 1호는 그 후 1993년에 2호, 1999년에 3호 위성을 자체개발하는 기반이 됐다. 우리별 1호 발사 4년 뒤인 1996년 정부는 `우주개발중장기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과학기술위성 1호의 개발에 착수, 2003년 9월 발사했다. 1999년 12월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실용위성인 470㎏급의 다목적실용위성 1호(아리랑 1호)가 발사돼고 이어서 2006년 7월에는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국내주도로 개발된 1m급 고해상도 지구관측위성인 다목적실용위성 2호가 성공적으로 우주에 안착했다. 지난 6월 28일에는 최초의 정지궤도위성인 천리안도 발사에 성공했다. 발사장은 우리별 1호가 발사된 남미 기아나였다.
· 자료협조=국립과천과학관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