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업계 M&A, 이대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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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과컴퓨터는 한국을 대표하는 소프트웨어 기업이다. 하지만 1990년 설립 이후 20년간 주인이 8번이나 바뀌었다. 주인이 바뀔 때마다 전략과 조직은 우왕좌왕했고 연간 매출도 400억원대 머물렀다. 이 회사는 8번째 주인이 바뀐 지 불과 1년 만에 또 다른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1977년 설립된 미국의 SW업체 오라클은 33년간 무려 60개 기업을 인수 · 합병(M&A)했다. 1년에 2개 기업이 합쳐졌다. 그 결과 벤처기업에서 출발한 이 회사는 연간 매출 233억달러(28조여원)의 공룡기업이 됐다. 래리 엘리슨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8450만달러로 미국에서 가장 많은 급여를 받았다. 고급 인재들이 가장 근무하고 싶은 회사로도 떠올랐다.



국내 · 외 대표 SW기업의 엇갈린 인수합병(M&A) 사례다. 국내 대표 SW기업은 M&A 시장의 단골 매물로, 글로벌 대표 SW기업은 M&A 시장의 큰손이 됐다.

최근 한컴 M&A, 핸디소프트 상장폐지 심사 등을 계기로 왜곡된 국내 SW업계 M&A 문화가 도마에 올랐다. M&A가 기업의 근원적인 경쟁력 향상보다 기업사냥꾼이나 `먹튀`의 온상이 됐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오라클뿐만 아니라 IBM, HP 등 글로벌 기업이 수십차례의 M&A를 통해 시장의 경쟁력을 키우는 상황과 반비례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건전한 M&A 문화를 위한 업계의 자정노력과 함께 정부의 제도적 장치 마련이 적극 검토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왜곡된 국내 SW업계 M&A 문화를 바로 잡기 위해 전문가들은 CEO의 마인드 변화를 첫손으로 꼽았다. 끝까지 오너십을 유지하겠다는 고집 때문에 결국 기업사냥꾼의 표적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비판이다.

올초 공격적 M&A에 나서겠다고 밝힌 안철수연구소 김홍선 사장은 “M&A를 할 만한 요소기술을 가진 기업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며 “찾더라도 터무니없는 인수가에 번번이 무산된다”고 말했다. M&A에 선뜻 나서려는 오너도 없지만, 성사 불가능한 조건을 내세우는 게 다반사라는 것이다.

지난해 정부와 기업이 공동으로 SW산업 구조 선진화를 위한 M&A 펀드를 조성했지만 이 역시 M&A 물망에 오른 오너들이 한사코 거부하면서 성과를 거의 보지 못했다.

5개 기업을 성공적으로 M&A하고 최근 창업인큐베이션 프라이머를 설립한 권도균 사장은 “기술 사이클이 짧은 SW 기업은 안정적인 수익을 내며 성장 곡선을 그릴 때 M&A를 고려해야 한다”며 “회사가 창업자의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전문 경영인을 도입해 회사가 발전할 수 있는 M&A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00년 네이버와 한게임이 합병한 뒤 지분을 공유하며 NHN으로 새 출발하면서 회사 가치를 키운 모델도 벤치마킹 대상으로 제시됐다. M&A가 당장의 투자 회수 용도로만 인식되면 무조건 많은 금액을 배팅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찬석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네이버와 한게임은 M&A 뒤에도 지분을 유지하며 미래에 투자하는 `윈윈전략`의 모델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벤처캐피털 등 전문 투자기관들이 기업공개(IPO)만을 통해 투자를 회수하려는 문화도 개선될 과제로 꼽혔다. 더불어 투자기관들이 M&A에 적극 투자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 개선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지은희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정책연구팀장은 “미국의 경우 벤처캐피털의 90%가 M&A를 통해 투자금을 회수할 정도로 M&A펀드가 풍부해 건전한 M&A 성사도 잘 이뤄진다”며 “국내에서도 이 같은 문화 정착을 위해 M&A에 적극적인 기업에 세제 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적극 고려해볼 만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 SW산업에서 M&A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산업 생태계와 비즈니스 구성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며 “최근 전 세계 M&A 시장에서 주요 타깃이 되고 있는 클라우드 컴퓨팅, 가상화, 그린 솔루션 등 분야의 기술 혁신을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