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적이다`
서울 적선동에 있는 개인사무실에서 만난 한승수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이사회 의장은 1936년생이다. 올해로 일흔 네살인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만나자마자 과거 박정희 정부에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양적 경제성장을 버리고 앞으로 50년은 녹색성장으로 나아가야 할 뿐더러 국제무대에서도 녹색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개척자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더위에 자칫 흐트러지려 하는 기자까지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든 한 의장. 그런 그에게서 GGGI의 계획과 녹색성장에 대해 들었다.
“GGGI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고 새로운 경제발전 패러다임으로서 국제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우리나라가 주도해 설립한 글로벌 연구소입니다. GGGI는 녹색성장의 전파를 통해 개도국 경제발전과 함께 전 세계 기후변화 문제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한 의장은 먼저 GGGI의 역할을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그간 선진국을 배우면서 양적 경제성장을 해 왔으나, 이제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을 갖고 질적 성장을 추구함으로써 다른 개도국의 모범이 돼야 하는 위치에 있다”며 “그래서 그 해답으로 녹색성장 패러다임이 등장했으며, 그 역할의 중심에 GGGI가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 의장은 또 “GGGI는 2012년까지 국가 간 조약에 의한 국제기구로의 발전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GGGI를 우리나라의 자산이자 인류의 자산으로 성장시킴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녹색성장에 대한 이니셔티브와 리더십을 공고히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한 의장은 GGGI의 국제기구화 달성을 위해 외국 정부 및 민간기관의 자금지원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고 국제적 명망과 역량을 갖춘 인물로 이사회 및 자문위원회를 확충하는 등 인적 · 물적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작업을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한 의장은 “20명 내외의 GGGI 이사진이 완전히 구성되면 전 세계가 깜짝 놀랄 것”이라며 “본부는 서울에 있지만 세계적인 전문가들이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사회에는 이미 니컬러스 스턴 영국 런던정경대(LSE) 교수, 토머스 헬러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등 기후변화분야의 저명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여기에 수준 높은 해외 인사를 추가해 15~20인 정도로 구성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의장은 “GGGI는 녹색성장의 `싱크탱크`이자 `액트탱크` 기능을 하는 연구소”라고 정의했다. 기후변화 문제를 연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에 직접 나서는 기구라는 것이다.
GGGI는 우선 개도국에 녹색성장 정책수립 및 이행을 지원하는 사업을 추진해 녹색성장 모델을 전파하고 개도국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는 계획이다. 올해에는 우선 브라질, 인도네시아, 에티오피아 3개국의 녹색성장계획 수립 사업을 지원할 계획이며 점차적으로 대상 국가와 지역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아울러 사업대상 국가들의 온실가스 감축 모델을 옥스퍼드대학교와 공동으로 개발할 예정이다.
한 의장은 “이 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녹색성장의 이론적 체계화, 즉 데이터베이스를 확충하고 모델 개발을 추진하는 한편, 녹색기술 개발 · 보급과 핵심인재 교육 등을 통한 개도국의 녹색성장 역량 배양에도 노력을 기울일 방침”이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GGGI는 녹색성장의 글로벌 전파를 위해 글로벌 녹색성장 보고서를 정기적으로 발간하고 글로벌 녹색성장 콘퍼런스를 정기 개최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한 의장은 “GGGI는 다른 국제기구와는 차별성을 갖고 있다”며 “국제연합환경계획(UNEP)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여러 국제기구에서 우리 녹색성장 정책에 관심을 갖고 녹색성장보고서 발간, 녹색성장선언문 채택 등 우리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지만 GGGI는 그 자체로서 녹색성장의 발전과 전파를 목표로 설립된 조직이라는 점에서 기존 국제기구와 다르다”고 밝혔다.
또 기후변화에 정부가 패널(IPCC) 등 전문가들이 모여 기후변화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문제를 분석하는 데 집중해 온 반면에 GGGI는 개도국의 저탄소 녹색성장 계획을 수립함으로써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 역시 차별점이다.
GGGI에 대한 설명에 이어 한 의장은 2주년을 맞은 우리나라의 녹색성장에 대한 평으로 “녹색성장 강국 도약을 위한 발판은 마련했으나, 아직은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녹색성장은 1, 2년 안에 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오랫동안 지속될 새로운 패러다임이므로 지속적으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의장은 “녹색성장이 성공하기 위한 열쇠는 바로 신재생에너지 · 그린카 · 이산화탄소저장포집(CCS) · 스마트그리드 등과 같은 녹색기술인데, 아직 우리의 녹색성장은 시작단계로서 투자 리스크, 환경변화에 대한 민감도 차이 등으로 인해 특히 중소기업들이 녹색기술 개발에 안정적으로 투자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꼬집었다.
따라서 초기에 다양한 분야의 녹색기술에 대해 국가 주도로 전략적 연구개발(R&D)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이 한 의장의 생각이다. 이는 녹색성장이 본격화되면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대기업이 다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기술이나 부품을 중소기업에 맡기는 등 역할분담이 이뤄질 것이기에 그 이전까지는 국가의 주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한 의장은 대-중소기업에 관계없이 국내 모든 기업들이 녹색성장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것을 당부했다.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투자가 단기적으로는 기업에 부담이 되겠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현재와 같은 에너지 집약적 산업구조로는 더 이상 국제 경쟁력을 유지 · 강화하기 어려울 전망이기 때문이다.
한 의장은 “국내 기업들이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신재생에너지 등 유망 분야에 투자를 확대하고 정부가 핵심 기술개발, 세제혜택 등을 통해 기업의 부담을 줄여준다면 기후변화 위기를 경제성장의 기회로 활용하자는 녹색성장 비전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차례 고사해오다 의장직을 맡게 된 것에 대해 한 의장은 “국제기구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국내 문제에 집중하는 기구라면 자리를 맡지 않았을 것”이라며 “불행하게도 국내에는 `글로벌 인맥`을 갖춘 인사가 거의 없어 어쩔 수 없이 잠시만 GGGI의 길을 트기 위해 초대 의장직을 수락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유엔사무총장 기후변화특사, 물과 위생에 관함 유엔 사무총장 자문위원, 유엔 기후변화와 경제발전에 관한 세계지속성 고위급위원회 위원 등을 맡고 있다. 국내에서는 전문성에다 세계적이면서도 역사적인 `국제기구 탄생` 업적을 이뤄낼 수 있는 인물로선 그만 한 사람이 없다는 평이다.
함봉균기자 hbkon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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