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은 연인이나 자식의 생일에나 어울릴 법한 말이다.
영화 `터미네이터1` `람보2` `타이타닉`에 열광해 현실 속에서 영화 속 장면을 한번쯤 흉내내본 사람이라면 바로 이 사람에게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할지도 모른다.
1954년 8월 16일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인구 1만명 남짓한 도시 카푸스카싱에서 태어난 제임스 캐머런 감독 말이다. 화가인 어머니와 전기기술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가 어린 시절 독서광이었으며 잡동사니로 로켓 · 비행기 · 탱크 등을 만들면서 미니어처 제작을 습작한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유년기부터 인문학과 기술 전반에 걸쳐 두루 지식을 쌓아온 그는 대학에서 물리학과 영문학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기술에 대한 남다른 이해와 새로운 세계를 향한 끊임없는 탐구는 기존의 영화에서 보여주지 못한 이미지를 관객의 눈앞에 펼치게 했다.
`터미네이터2`에서 T-2000의 변신, `타이타닉`의 거대한 침몰 장면 등은 영화사에 기록될 만큼 혁신적인 장면들이었다. 화려한 화면보다 더욱 주목할 것은 제임스 캐머런이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터미네이터에서 그는 기술이 지배하는 미래사회의 암울한 단면을 경고했고, 유일한 실패작으로 꼽히는 `어비스`에서는 기술의 오용이 가져올 위험성을 이야기했다.
수많은 이들이 제임스 캐머런 영화에 매료되는 것 역시 기존 영화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시각 경험 외에도 기술에 대한 비판적 지지, 희생적 사랑을 통한 구원 같은 메시지가 부담스럽지 않게 화면 속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의 최근작 아바타는 그의 전작들이 보여준 영화적 완성도를 바탕으로 기술과 예술의 적절한 조화가 무엇인지를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영상 세계를 창조했다. 군데군데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차용한 표현이 보이고 이야기가 독창적이지 못하다는 비판도 잇따랐다. 아바타가 아니었다면 올해 초까지 가능성 탐색에만 머물렀던 3D 입체 영상이 영상의 새로운 표현 양식으로 자리잡기는 어려웠을 만큼 놀라운 시각 경험을 제공해줬다. 어쨌거나 영화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화면으로도 말을 거는 예술 아닌가.
괴팍한 성질로 배우와 스태프들을 괴롭히던, 시상식장에서 `나는 세상의 왕`이라고 외칠 만큼 자만심에 찬 인물이라도 상관없다.
차기작인 `배틀 엔젤` 그리고 앞으로 제작할 숱한 영화에서 전에 겪지 못했던 새로운 영상체험을 선사해준다면야 56년 전 캐나다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괴짜 감독의 생일마다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을 것 같다.
이수운기자 per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