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년간 우리 기업들은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글로벌 경제위기를 겪었다. 급변하는 세계 경제 패러다임 속에서도 간판급 대기업들은 나름대로 선전했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 경영 여건이 선진국보다 유리했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먼저 환율이 좋았다. 경제위기 와중에 급격한 원화 약세는 수출기업들에 가격경쟁력 제고라는 뜻밖의 선물을 안겨줬다. 반면 경쟁 관계에 있는 일본 기업들은 엔화 강세로 고충이 한층 더했다. 유가도 크게 떨어져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우리 기업들의 원가경쟁력을 높여줬다.
환율과 더불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 강도가 상대적으로 약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유리한 여건이었다. 자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많은 선진국 기업은 경제위기와 급격한 내수시장 위축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문제는 이런 제반 여건들이 우리 기업에 점차 불리한 쪽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국외 경쟁기업들이 내수를 비롯한 선진시장 확대에 한계를 느끼자 대신 신흥시장 쪽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신흥시장은 우리 기업들이 위험을 감수하며 현지화 등 시장 개척 노력으로 나름대로 선전해온 시장이다. 새로 창출되는 시장 중 80%가량을 차지하는 신흥시장에 선진국 기업들도 드디어 침을 흘리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기업들은 정부의 수출독려정책을 등에 업고 신흥시장 고객 발굴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럽 기업들도 유로화 가치 하락을 바탕으로 재정 긴축을 보완할 새로운 수요처 확보를 위해 해외시장 공략에 힘을 쏟고 있다.
가장 활발한 곳은 일본 기업들이다. 올 2분기 중 일본 상장기업들 이익이 전 분기보다 50% 가까이 급증했다. 이른바 `볼륨존` 전략 강화를 통한 신흥시장 매출 증가에 힘입은 결과다. 최근 발표된 3~5년 중기계획에서 일본 기업 대부분이 신흥시장 전략 강화를 내세웠다.
친환경 에너지 등 녹색산업, 헬스케어 등 일본 기업들 신사업이 우리와 상당 부분 겹친다. 여기에다 중국, 인도 등 신흥국 기업들과 경쟁도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희소자원을 바탕으로 혹은 독점적 국영기업으로 성장한 신흥국 메이저급 기업들이 점차 독자적인 기술력 등 자체 역량을 가지고 세계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내수시장에서 덩치를 키운 중국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다져 나가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면승부가 다가오고 있다. 선진국 기업들이 배수진을 치고 나오고 신흥국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쉽지 않은 싸움이다. 환율 여건도 불리한 방향으로 굴러갈 가능성이 크다. 경쟁 격화로 제품 가격이 싸져 수익이 악화될 수 있다. 종전의 `패스트 폴로어(fast follower)` 전략으론 더 이상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 글로벌 경쟁 판을 짜고 이를 선도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나가야 할 때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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