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코리아2010] 좌담회, `나노 기술 고단한 길이지만 꼭 가야할 길`

반도체 · 디스플레이 · 자동차 · 의료 · 바이오 등 인류에게 필요한 전 산업에 걸쳐 `나노`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나노가 이 분야에 접목되면서 기존 기술로는 불가능했던 일들이 실현가능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노 기술은 수 십년간 연구가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행형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인간의 삶을 변화시킬 가장 큰 기술로 나노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본지는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개최된 `나노코리아 2010` 행사를 후원하면서 나노분야 노벨상 수상자 2명과 한나라당 박영아 의원을 초빙, 나노가 어떻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지 조망해봤다. 노벨상 수상자들에게는 노벨상 수상자 배출을 위한 인프라와 교육에 대해 조언을 들었다.

참석자들은 앞으로 인류의 생활과 관련한 모든 분야에서 나노 기술이 쓰이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렇지만 가시적인 결과가 나오는 데는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이들은 나노 기술을 발전시키고 한국에서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는 길은 창의적인 젊은 인재를 키우기 위해 교육 제도를 개혁하는 것, 인재 육성을 위해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라는 조언도 곁들였다.

▲토론자

◆로버트 그럽스 칼텍 교수(68 · 탄소와 금속의 이중 · 삼중결합을 만들어 유기화합물의 실용화 길을 열어 쇼뱅, 슈록과 함께 새로운 유기화합물을 만들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중합(활성 폴리머의 생성)에서의 유용한 촉매작용을 가진 복합체의 설계와 합성에서 이룩한 획기적인 연구성과를 인정받아 2005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페테르 그륀베르크 윌리히 연구소 박사(71 · 1988년 `GMR`(거대자기저항)를 발견했다. GMR는 강자성(强磁性)을 띤 금속 박막과 자성을 띠지 않은 금속 박막이 겹쳐졌을 때 발생하는 양자역학적 효과로서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의 탄생의 모태가 됐다. 2007년 GMR 발견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박영아 한나라당 의원(50 · 송파갑, 1983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국회의원 가운데 몇 안되는 이공계 출신으로 과학계의 입장을 대변해왔다. 한나라당 의원임에도 올해 초에는 본지를 통해 과학기술부 그리고 정보통신부 등의 핵심적 기능과 역할을 합쳐 가칭 `미래기획부` 신설을 제안하기도 했다)

▲사회

이조원 박사(나노코리아 심포지엄 위원장, 테라급나노소자개발사업단장)

◇사회=오늘 좌담회는 저명한 노벨상 수상자 두 분과 몇 안되는 이공계 출신 국회의원인 박영아 의원을 모시고 나노과학기술의 현주소에 대해 이야기 나누겠다. 한국의 연구자들이 나노기술을 바탕으로 노벨상에 도전할 수 있도록 이번 좌담회가 젊은 연구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미국에서 나노기술 개발이 시작돼 토대를 닦았고 현재 나노 기술은 상용화 수준까지 와 있다. 한국은 미국 · 일본 · 독일 다음 네 번째 나노 선진 국가다. 지금 각국의 나노 현황은 어떤가? 또 앞으로 한국 나노기술은 어떻게 발전하면 좋을까?

◇박영아 의원= 우리나라의 나노 기술은 미국의 75% 수준밖에 안 된다. 나노기술에 관한 연구개발(R&D) 예산이 지난 2000년에 11억달러였는데 올해 예산이 겨우 21억달러다. 바이오 같은 다른 분야에 비해 별로 늘지 않았다. 본인을 비롯한 나노 분야의 많은 사람들이 좀 더 많은 투자가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 하이테크 분야나 세계에서 넘버원하는 제품에 관한 논문이나 특허의 수가 적은데 `히트`제품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노기술은 기초과학과 산업적 마인드가 모두 필요한 `퓨전기술`이다. 나노를 발전시키기 위해 기초과학 연구에 좀 더 많은 투자를 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정부는 물론 산업계와 학계와 같은 민간 부문의 경쟁력을 기르는 것 역시 중요하다.

◇페테르 그륀베르크 박사=독일을 포함한 유럽은 과학자로서 계속 연구할 수 있게 해주는 환경이다. 나는 6년전에 은퇴를 했지만 계속 연구할 수 있는 환경에 있어서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로버트 그럽트 교수=본인은 나노 분야에서는 약간 벗어나 있는 학문을 하지만 유기적인 프로그램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는 있겠다. 근본적인 건 훌륭한 사람, 적합한 사람을 찾는 것이다. 미국은 그런 점에서는 잘 하고 있다. 최고의 자리에 가기까지 다양한 경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창의적인 인재를 정의하는 방법을 찾으려면 무엇이 그런 인재를 만들고, 그들이 어떠했는지를 아는 게 핵심이다. 미국이 우주 탐험을 했던 걸 떠올려보면, 러시아(구 소련)가 스푸트니크호를 쏜게 내가 고등학생 때고 이후 미국의 교육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정부는 과학자 배출을 위한 교육 인프라를 조성했다. 때로는 위기가 어떤 분야에 집중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사회=나노기술이 2015년을 전후해 1조달러 규모 이상의 시장을 형성한다고 전망하는 학자들이 있는 반면, 여전히 기초 과학에 투자해야 할 단계라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에 대한 견해는?

◇그륀베르크=우리는 지금껏 지식을 축적해왔다. 교과서를 비롯해 많은 결과물이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마스터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나노기술은 새로운 물리학 · 화학 등의 교집합에서 나올 수 있고, 지혜를 모아야 하는 문제다. 국가 간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좋은 기술, 적합한 투자들에 대한 논의가 있다.

◇그럽스=상업화는 매우 어렵고 긴 과정을 거쳐야 가능하다. 우리는 간단한 나노 제품을 만들었지만 나노가 새로운 기술로서 기존 기술을 완전히 대체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기한을 맞춰서 개발을 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표준적인 연료전지는 10년 전에는 현재처럼 이렇게 될 줄 몰랐지만 지금은 많은 분야에서 사용되는 예에 비춰보면 만약 나노기술 분야에도 훌륭한 연구자가 진입하고 이 기술에만 집중하면 아마 좋은 결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박영아=사회자가 상용화와 관련해 전 세계적인 나노 분야로 범위를 넓히고 이야기했지만, 내 생각에는 역시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중요하다. 메모리 시장은 매우 커졌지만 개발도 계속되고 있다. 재미있는 얘긴데, 2주 전에 영국을 방문했을 때 신문 기사를 봤더니 영국공학아카데미 학회 회장과 영국왕립과학학회 회장 간 논쟁이 실려 있었다. 공학아카데미 회장은 더 이상 기초과학에 투자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하고 과학학회 회장은 여전히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같은 논쟁은 항상 존재하는 것 같다.

◇사회=세계 60여개 이상의 국가가 정부 정책으로 나노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나노기술이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성장동력으로서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박영아=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5~10년 전에 우리가 이 분야에 투자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결론을 얘기하자면 많은 이들이 21세기에도 기술 개발이 더 필요하다고 봤다. 나노과학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그럼 나노가 어떤 시장을 창출할 것인가. 나노코리아 2010에서 논의한 여러 주제가 가까운 미래에 새로운 시장으로 나타날 것이다. 나노기술이 한국 경제와 세계 경제의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럽스=과학자의 입장에서 기초과학에 투자하면 여러 분야에서 혜택을 입을 수 있다. 우주과학이 좋은 사례다. 기술 발전으로 인공위성을 발사할 수 있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인공위성을 개발하면서 얻은 다양한 기술과 정보다. 미국 교육과 연구제도, 미국 노벨상 수상자 수를 보면 1960년대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기초적인 기술에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정 상품 개발에 자금을 투자해서 상품이 성공하지 못하면 투자금을 낭비한게 되지만 같은 돈을 새로운 기초기술에 투자하면 다양한 기회를 열어줄 수 있다.

◇그륀베르크=다양한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상용화와 연구 분야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상품화가 기초과학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 많은 학자들이 기초과학을 연구한다. 하지만 2∼3년 지나면 또 새로운 기술이 나타난다. 그래서 매번 새로운 대상을 연구해볼까 하다가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연구 방향이 보인다. 이렇게 기술이 발전해 간다. 나노 분야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예상한다. 당분간 이 분야를 연구하는 건 매우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사회=한국은 아직 이공계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나노과학기술 분야에서 뛰어난 과학자들이 많이 등장했다. 나노 분야에서 노벨상을 수상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인이 어떻게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을까?

◇그륀베르크=많은 학생들이 열심히 연구하고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다음 학회나 다음 논문을 위해 좋은 연구 결과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럽스=많은 이들이 말하길, 과학자도 시기와 분야에 따라 운에 많이 좌우된다고 한다. 여성과 소수 인종들이 이보다 많이 과학계에 종사하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과학자가 노벨상을 타기까지는 약 30년이 걸린다. 보통 노벨상 수상자는 60대인데 그렇게 따지면 박사학위를 약 30~35세 전에 따야 한다. 35세 이전에 박사학위를 수료하는 한국 연구자들은 많지 않다. 인내심이 필요하다. 35∼36세에 획기적인 발견을 하는 과학자는 적고 보통은 오랜 기간을 두고 연구해야 한다. 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재를 등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시험 제도가 중요하고, 공부는 시험의 연속이라고 알고 있다. 이것이 인재 육성을 위한 좋은 방법인지 의문이 든다.

◇박영아=동의한다. 1970년대 한국에는 특히 과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적었다. 나도 1987년에야 박사학위를 땄다. 이제는 많은 훌륭한 과학자들이 미국 등에서 박사학위를 수료하고 국내외에서 연구하고 있다. 지금처럼만 나아간다면 10~15년 내에 한국도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한국은 지난 20년간 교육제도가 별로 발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전히 시험 중심 체제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해도 주말이나 방학에 독서할 시간이 있었지만 요즘 청소년들은 밤낮 공부만 한다. 다행인건 많은 학생들이 이런 경직된 교육 제도 안에서도 상당히 개방적인 사고를 한다는 것이다. 교육제도를 개혁해서 학생들이 더 많은 자유 시간을 누리고 자율성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최근 새로운 대입 제도를 도입해 수능 성적뿐만 아니라 내신 등 기타 기록도 중요하게 됐다.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그럽스=미국에서 또 하나 중요한 건 유연성이다. 내 아들처럼 인류학 전공으로 입학해서 화학과 전공으로 졸업하는 게 가능하다. 처음부터 특정 전공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충분히 여러 길을 모색하고 결정할 여지를 두는 게 중요하다.

◇박영아=전적으로 공감한다. 한국 제도는 인문계와 이공계로 분리돼 있어서 인문학과 과학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할 시기에 학생들이 진로를 정해야 한다.

◇그럽스=가혹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미국 대학에서는 처음 2년간은 모두 동일한 과목을 수강한다. 그 후 수학 · 화학 등 자신의 전공을 선택한다.

특정 전공에 쏠림 현상은 균형을 찾게 마련이다. 몇 년전에는 다들 전자공학을 선호했지만 지금은 생물학을 택한다. 미국에서는 학과가 계속 변한다. 전기공학과 학생 수가 줄어들면 기계공학 등 당시에 각광받는 학과의 과목을 개설하는 식이다.

◇박영아=기초 연구 개발을 위해서는 원하는 분야를 연구할 수 있도록 높은 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

◇그럽스=관리자 입장과 과학자 입장에서 중요한 차이점은, 관리자는 `우리는 앞으로 녹색 화학 기술에 특화할 것`이라고 방침을 정하더라도 기초과학 연구자들은 그 분야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의 방향을 결정할 때 위에서 아래로(top-down) 결정이 하달되는가, 아래에서 위로(down-top) 요구가 수용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사회=마지막으로 나노코리아에 대한 인상과 한국 나노 분야 발전을 위한 제언을 부탁한다.

◇그륀베르크=나노코리아에서 보여준 주제들이 매우 흥미로웠다. 일반론적인 조언을 하자면 좋은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좋은 교수진을 갖춘 훌륭한 교육기관을 설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교육에서는 엄격한 시험 제도가 중요하다고 들었는데, 산업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는 그 제도의 최상위 시스템의 영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럽스=우리 둘은 각각 물리학자와 화학자로서 업계의 극과 극을 대변한다. 이렇게 다양한 관점을 모두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노 분야의 발전을 위해서는 광범위한 분야의 다양한 인력이 참여해야 한다.

◇박영아=나노과학은 내 전공은 아니지만 나노코리아에 지난 3년간 참여해왔다. 이 분야는 지난 10년간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한국의 젊은 인재를 위해 자율성을 보장하는 교육 · 지원 제도를 갖추는 게 국회의원으로서 내 역할이다.

◇사회=국가 전략상 한국은 엘리트 제도를 유지하기를 원한다. 보편적인 교육도 좋지만 뛰어난 인재를 선발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럽스=이상적인 건 다양한 분야의 훌륭한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다.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배운 말이 “빨리빨리”다.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시험 제도와 유연한 교육은 서로 목적이 다르다.

◇박영아=참고하겠다. 개인적으로는 나노 분야에 대해 논의할 수 있어서 영광이다. 나노코리아는 한국의 기초과학과 신기술 발전을 위한 좋은 기회다. 앞으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한 인재 육성제도를 갖추고, 이들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과제다.



정리=오은지기자 onz@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