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메카 두 `밸리` 뜨거운 경쟁

서울의 대표적 벤처기업 메카인 강남 `테헤란밸리`와 구로 `G밸리` 간 경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벤처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현재 서울 소재 벤처기업은 4919개. 이 가운데 2001개(41%)가 두 `밸리`에 모여 있다.

# 지난 12일 서울 구로구 구로동 서울디지털산업단지(G밸리) 한 아파트형 공장. 한방 의료에 사용되는 은나노침을 생산하는 벤처기업 아이나노스는 2006년 4층의 약 727㎡(220평) 공간을 사들였다. 이 중 495㎡(150평)는 공장이고 나머지는 사무실로 사용 중이다. 공장 문을 열자 직원들이 가느다란 은색 침을 가공ㆍ조립하느라 어수선한 `공장`이었다. 양원동 사장은 "다음달 바로 옆 건물에 약 3305㎡(1000평) 사무실을 매입해 친환경 자동차용 연료절감장치 생산공장으로 만들 예정"이라며 "강남에선 땅값이 비싸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공단 이미지를 벗은 구로디지털단지는 서울의 대표적 첨단산업단지로 자리 굳히기에 나섰다. 한국산업단지공단 관계자는 "매달 200~300개 기업이 입주 계약을 체결한다"고 말했다.

G밸리에 입주한 기업은 지난 6월 말 1만개를 넘어섰다. 이 중 1328곳이 벤처기업 확인을 받았다. 1990년대 한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며 전성기를 누렸던 테헤란밸리 벤처기업 수와 맞먹는다.

G밸리에 기업이 몰리는 가장 큰 이유는 저렴한 임차료 때문이다. 박상봉 구로경영인연합회 사무국장은 "G밸리에서는 같은 자금으로 강남보다 두 배 넓은 사무실을 매입할 수 있다"며 "관리비도 강남의 3분의 1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기업 간 촘촘한 네트워크도 빼놓을 수 없다. 보통 한 아파트형 공장엔 기업이 100여 개, 근로자는 1000여 명이 들어간다. 이런 아파트형 공장이 2000년 8곳에서 올해는 83곳으로 늘었다. 공사가 진행 중인 건물까지 합하면 100개를 넘어선다.

G밸리에서 근무하는 김 모씨(32)는 "아파트형 공장엔 음식점, 카페, 은행, 문구점 등 웬만한 건 갖춰져 있기 때문에 점심시간에 멀리 나갈 필요가 없어 한 건물 내에서 다른 기업 직원들과도 식구처럼 친하게 지낸다"고 말했다. 기업 간 커뮤니티도 현재 100여 개에 이른다.

2006년 테헤란밸리를 떠나 G밸리에 새 둥지를 튼 노재혁 대승의료기 사장은 "강남에서는 기업 간 교류가 거의 없었다"며 "G밸리에서 동종ㆍ이종 기업 간 네트워크를 통해 사업 아이디어를 얻고 판로를 개척해 4년 전에 비해 매출이 10배 이상 올랐다"고 말했다.

또 올해부터 기업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클러스터 구성 사업이 진행 중이다. 현재 디지털콘텐츠, 정보통신 등 4개 클러스터에 기업이 각각 40개씩 가입해 있다.

# 같은 날 서울 강남구 역삼동 테헤란밸리 한 건물. 카메라를 이용한 터치스크린 기술을 보유한 더게이트테크놀로지는 2003년 이후 줄곧 이곳에서 성장한 벤처기업이다. 70인치의 검은색 대형 스크린은 손가락이 닿자 스마트폰처럼 다음 화면으로 매끄럽게 넘어갔다. 최근 20~70인치 터치스크린 모듈 제품을 개발한 이현오 사장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장 공략에 관심이 많다. 이 사장은 "얼마 전 수출상담회에서 해외 바이어가 `IT 랜드마크인 강남을 잘 안다`며 제품에 큰 관심을 보였다"면서 "강남은 알아도 구로는 모르는 외국인이 훨씬 많다"고 강조했다.

사실 서울의 IT 메카는 테헤란밸리였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IT 열풍과 함께 수많은 벤처기업이 이곳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2000년대 IT 거품이 꺼지면서 기업들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2000년대 중반부터 강남 일대 땅값이 치솟자 임대료가 뛰면서 기업은 땅값이 저렴한 G밸리로 눈을 돌렸다.

벤처기업협회 통계를 보면 2006년 후반 G밸리가 벤처기업 수에서 처음 테헤란밸리를 제쳤다. 한때 1000개 이상이었던 테헤란밸리 벤처기업 수는 내리막길을 걸어 2008년 중반 455개까지 급감했다. 그동안 G밸리는 승승장구했다. 기업 수가 매년 10~20%씩 꾸준히 늘면서 2008년 중반엔 1000개를 넘어섰다.

하지만 작년부터 테헤란밸리가 옛 명성을 되찾고자 반격에 나섰다. 재작년부터 벤처기업 수가 상승세로 돌아섰다. 올해 6월 현재 670여 개까지 증가했다. 윤정철 기술보증기금 강남기술평가센터 팀장은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테마가 생기면서 애플리케이션 개발 등 모바일 산업에 뛰어드는 창업ㆍ벤처기업이 늘기 시작했다"며 "상담 건수도 작년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고 전했다.

테헤란밸리 벤처기업들은 회사 인지도를 높이고 제품에 신뢰를 더하는 데 강남만큼 좋은 곳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솔루션을 개발하는 한 벤처기업 사장은 "강남은 회사와 제품의 이미지를 포장하기에 좋은 곳"이라며 "테헤란밸리에 있어야 거래처가 잘 만나주는 시절이 있었을 정도로 강남 자체 프리미엄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직장인 맹진애 씨는 "강남은 상업ㆍ문화시설이 많고 교통이 편리해 젊은 직장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근무지"라고 말했다.

예비 벤처기업부터 큰돈을 굴리는 금융회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업이 고루 있는 독특한 생태계도 강점이다.

■ 해외판로 개척ㆍ고용비용 지원…구청도 기업유치 팔걷었다

해당 자치구도 기업을 한 곳이라도 더 유치하기 위해 각축전이 치열하다.

정보기술 밸리로 탈바꿈하면서 기업도시를 내세우는 구로구는 중소ㆍ벤처기업이 겪는 애로사항을 맞춤형으로 해결해 주는 `포괄적 마케팅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구로구는 벤처기업협회와 공동으로 구로e-몰을 운영하며 기업들이 생산한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는 한편 국외 판로 개척을 돕기 위해 한민족글로벌 벤처 네트워크(INKE)와 연계해 국외 판매 지원도 하고 있다. 또 블로그ㆍ모바일을 이용한 마케팅 지원도 꾸준히 하고 있다.

구로구는 또 작년부터 G밸리에 입주한 기업과 구로구 소재 벤처ㆍ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청년인턴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구는 기업이 청년인턴을 고용하면 한 사람당 100만원씩 회사에 인건비를 지급한다. 작년에 시작했으며 올해는 예산을 두 배 늘려 20억원을 투입하고 인턴 기간도 6개월에서 10개월로 늘렸다.

구로구 관계자는 "올해는 200명 전원이 정규직으로 전환 채용되도록 하는 게 목표"라며 " `실업제로센터`라는 홈페이지를 별도로 만들어 구직자가 이력서를 등록하면 구로구 상공회의소 승인을 받은 기업과 원활하게 연결이 되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테헤란밸리` 대표구인 강남구도 질 수 없다. 강남구는 한 번 떠난 기업 마음을 돌리기 위해 기업 지원 프로그램을 늘리는 등 `구애 작전`을 구상 중이다.

강남구는 강남으로 이전하거나 사업을 시작하는 기업에 고용 비용을 지원하고 융자금 금리를 우대해 주는 등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할 예정이다. 강남구는 여기에다 기업 유치만 전문으로 하는 `기업유치전담팀`을 구성하고 이를 위한 전문 인력까지 확보할 생각이다.

`테헤란밸리`의 상징인 테헤란로 주변의 높은 임대료와 공실률을 낮추기 위한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우선 테헤란로 건물 공실 현황과 임대료 시세 등에 관한 정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임대사무실 공실정보 포털사이트`를 구축하기로 했다. 또 임대료를 적정 수준으로 낮추는 건물주에 대해서는 지방세를 감면해 주는 방안도 논의될 예정이다. 상가 임대 시에 거래를 신고하고 가격도 공개하도록 하는 조례 제정도 검토 중이다. 이와 더불어 구는 높은 임차료 때문에 강남에 진입하지 못하는 청년 창업자들을 위해 테헤란로 주변 건물을 사들여 사무실을 일정 기간 저렴하게 임대하는 방법도 구상하고 있다.

[매일경제 임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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