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호 1차 발사 1주년, 10년같은 1년이 남긴 것

정확히 1년 전인 2009년 8월 25일 오후 5시를 몇 십초 앞둔 시점, 온 국민의 시선은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로 집중됐다. 카운트다운에 이어 대한민국 땅에서 쏘아 올려진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Ⅰ)가 힘차게 솟구치자 온 나라는 환희에 휩싸였다. 그러나 환호는 오래가지 못했다. 발사에는 성공했지만 216초대 페어링 분리에 실패하면서 위성궤도 진입이라는 임무를 달성하지 못했다. 그리고 꼭 1년 뒤, 우주강국을 향한 나로호의 비상은 여전히 `미완의 꿈`으로 남았다.

◇10년같은 1년=1년 전 1차 발사 실패 이후부터 나로호는 마치 10년처럼 길게 느껴지는 험난한 여정을 거쳤다. 1차 실패 직후 한 · 러 양측은 즉각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원인 구명에 나섰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올해 초 단일 원인이 아닌 페어링의 `전기적`, 또는 `기계적` 결함 등 두 가지 `추정` 원인으로 결론이 났다.

2010년 6월 나로호 2차 발사를 앞두고 1차 때 문제가 됐던 페어링에 대한 이중 삼중의 보완을 거치고 무수한 검증 작업을 거쳤다. 하지만 2차 발사도 순탄치는 않았다. 발사 이틀 전 나로호 기립 과정에서 지상 관측장치의 오류로 기립이 지연됐다. 9일에는 발사 3시간 여 전 소화장비 오작동으로 발사가 전격 중단됐다.

결국 하루 뒤인 10일 또다시 2차 발사에 나섰지만 이번엔 1차 때보다 더 상황이 나빴다.

발사에는 성공했지만 137초대에 폭발, 추락하는 최악의 결과를 지켜봐야했다.

◇끊이지 않는 논란=2차 발사까지 실패로 돌아가면서 나로호를 둘러싼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우선 발사 직전에 나타난 몇 가지 이상 징후들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발사를 강행한 것에 대해 `무리한 발사`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3차 발사 가능 여부를 놓고 한 · 러 간 2004년 체결한 계약서도 심심치 않게 도마에 올랐다.

계약서 문구상 러시아가 우리 측에 1단을 제공할 수 있는 지에 대한 구속력 여부를 놓고 `불평등 계약`이라는 비판이 곳곳에서 제기됐다.

정부가 2차 발사 직후 `3차 발사는 무조건 추진한다`는 의지를 확인하자 이에 대해 과학기술계에서는 `시험 발사 성격인 나로호 발사는 2번이면 충분하다`는 견해도 적지 않았다.

한 과기계 원로는 “해외 기술 제휴를 통해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한다면 또 다른 발사는 시간과 예산 낭비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3차 발사가 끝 아니다=하지만 이러한 무수한 논란을 뒤로 한 채 최근 교육과학기술부는 나로호 2차 발사 실패에 대한 한 · 러 양측 실패조사위원회(FRB)를 3회 개최, 2차 발사에 대한 실패를 공식 확인하고 내년쯤 3차 발사에 나선다고 공식 밝혔다. 대신 나로호에 탑재될 위성은 과학기술위성2호가 아닌 단순 기능만이 포함된 `검증용 위성`으로 확정됐다. 과학기술위성2호를 새로 제작하는 데 소요되는 시일이 문제였다.

정부는 우주 선진국을 향한 도전을 멈출 수 없는 만큼 나로호 발사를 성공리에 매듭짓고 한국형 우주발사체인 KSLV-Ⅱ로 이를 연계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3차 발사 성공 자체도 중요하지만 궁극의 목표는 우리 힘으로 기술 자립을 하는 것”이라고 섣부른 기대를 경계했다.

나로호 1 · 2차 실패를 경험한 김중현 전 교과부 제 2차관은 최근 퇴임 직전 “우리가 직접 하려니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나로호 시험 발사를 하는 것인데 3차 발사가 성공한다고 해도 너무 연연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궁극적인 목표는 독자 발사일 것”이라고 공식 밝힌 바 있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