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드라마인 `CSI과학수사대`의 수사 방식은 한결같다. 현장에서 DNA 등 흔적을 수거하고 이를 실험이나 DB를 통해 분석한 뒤 단서를 발견, 진실에 조금씩 접근하는 식이다.
지난 3월 26일 서해에서 침몰한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에 의해 비접촉 폭발했다`는 결론이 내려지기까지의 과정도 마치 한 편의 CSI를 보는 것처럼 `과학의 논리`를 통해 진실에 다가간다.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장을 담당했던 윤덕용 카이스트 명예교수(포스텍 자문위원회 위원장)가 최근 과학적 시각에서 본 천안함의 진실을 소개했다. 과학의 시각에서 볼 때 대중을 혼란에 빠트린 숱한 의혹들의 대부분은 `호기심의 대상`일 뿐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었다.
윤 교수는 해군과 전혀 인연이 없었지만 단지 물리학자이고 금속 세라믹 관련 기초응용 분야에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합조단장에 발탁됐을 것으로 스스로 추정했다. 당연히 처음부터 과학적, 객관적 방식으로 조사에 착수했다.
무엇보다 군함이 침몰해서 인양한 사례가 전 세계적으로 없어 참고할 만한 대상이나 관련 데이터가 없다는 것이 큰 애로사항이었다.
◇비접촉 파괴의 단서, `디싱`=가장 먼저 선저외판이 압력으로 접시처럼 우묵하게 눌린 이른바 `디싱(dishing)` 현상에 주목했다. 범죄 영화에서 수사관들이 피해자의 상처 부위 상태를 보고 흉기나 살해방식을 추정하는 것처럼 천안함 역시 배 밑부분의 디싱 흔적이 `비접촉`에 의한 파괴라는 단서를 제공했다. 윤 교수는 “배 사고를 접하는 전문가들이 누구나 아는 상식으로 디싱은 비접촉 파괴일 경우에만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함미 격벽이나 절단격벽의 변형 및 손상 상태도 비접촉으로 어뢰나 기뢰가 폭발했음을 증명했다.
◇흡착물은 알고 있다=천안함 함수와 함미, 연돌 등에 붙어있던 흰색 흡착물도 결정적 단서였다. 원소 성분 분석결과 탄소(C) 성분이 높았다. 일부에서 이 흡착물이 부식물이라고 주장했지만 탄소는 부식이 아닌 폭발할 경우에 나오는 원소라는 게 윤 교수의 설명이다.
X선 회절 분석기를 통해 `비결정체`로 결론이 내려졌는데, 이론적으로 폭발 시 급격하게 고온이 됐다가 급속 냉각되면 비결정체가 된다는 원리와 맞아떨어졌다. 이 흡착물은 RDX, TNT 등이 결합된 폭약성분으로 밝혀졌다.
◇버블제트가 아니라 `워터제트`=천안함 원인 구명 과정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버블제트`도 사실은 표현이 틀린데다 핵심이 아니라고 윤 교수는 정정했다.
수중 폭발 시 충격파가 빠른 속도로 퍼지면서 버블이 동그랗게 생기면 물을 밀어내 배를 들게 된다. 배 밑 가운데 부분이 깨지기 시작한다. 이후 버블이 수축하면 가운데가 무게 때문에 밑으로 내려오면서 또 손상된다. 이미 이 상태에서 배는 붕괴됐다는 설명이다.
윤 교수는 “완전히 수축한 뒤 버블 부근 압력이 굉장히 높아지면서 위로 올라와 해면의 버블이 깨지면 그때 `제트`가 생긴다”며 “그래서 버블제트가 아니라 워터제트라고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또 “천안함의 경우 제트가 안 생겼을 수도 있고 제트가 있었으냐 없었느냐는 원인 규명에 중요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1번`은 호기심의 대상일 뿐=어뢰에 쓰여진 숫자 `1번`에 대해서도 윤 교수는 “대중의 호기심 대상일 뿐 이게 있거나 없거나 결론은 같다”고 말했다.
바다에서 건저 올린 어뢰가 `정말 천안함을 공격한 어뢰`인지, `북한 것인지` 등을 밝혀내는 데도 과학적 분석이 필요했다.
어뢰 프로펠러에 흡착된 알루미늄 산화물이 유독 많았던 것은 미세한 산화물이 물에 섞인 상태에서, 폭발 시 수직방향 프로펠러가 만든 난기류(터뷸런스) 때문이라고 윤 교수는 말했다. 모터의 변형 상태도 망치 등으로 일부러 때려서 만든 것이 아니라 폭발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줬다.
의외로 어뢰는 조사단이 생각하기에 최후의 수단인 `쌍끌이 어선 특수 그물망`으로 수거했다.
뒤늦게 `원시적인 방법`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윤 교수는 “실재로 공군이 전투기 잔해를 이 방법으로 90% 이상 수거해 전투기를 복원한 사례가 있더라”며 “때로는 원시적인 것 같은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