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씨는 2007년 7월 H자산운용이 운용하는 국내 주식형 적립식 펀드에 매월 20만원씩 넣었다. 그는 최근 3년 만기를 맞아 900만원이 넘는 돈을 환매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손실을 보거나 10% 미만으로 낮은 수익률을 기록한 적립식 펀드도 많았지만 그가 선택한 펀드는 3년 수익률이 30%가 넘는 양호한 성적을 올렸다.
판매사에서는 환매자금을 다시 펀드에 투자할 것을 권했지만 A씨는 국내외 경기가 불확실해 주가가 더 떨어질 수도 있다고 보고 일단 현금화해 자신의 CMA 계좌에 이체했다. 그는 "판매사에서는 일반은행 적금과 달리 3년 만기가 지났어도 시장이 좋으면 수익을 더 올릴 수 있다고 했지만 다른 투자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현금화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 적립식 펀드도 자금 유출=적립식 펀드 시장에 대규모 환매 비상이 걸렸다. 국내외 주식형 펀드를 중심으로 2007년 하반기부터 2008년 상반기까지 자금이 집중 유입됐던 적립식 펀드의 3년 만기가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2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07년 7월부터 2008년 6월까지 국내외 주식형 적립식 펀드에 유입된 자금은 34조5070억원에 달한다. 금융위기로 큰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2009년 8월부터 환매를 시작해 이 중 11조원가량이 유출됐다는 사실을 감안해도 20조원 이상의 거액은 여전히 잠재 환매 대기자금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유형별로는 국내 주식형 적립식 펀드가 2007년 7월부터 1년간 약 20조원이 유입된 뒤 그 이후 다시 4조원이 환매됐다. 따라서 약 16조원이 잠재 환매 자금으로 분류된다. 해외 주식형 적립식 펀드는 같은 기간 14조원가량이 들어왔다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5조원이 유출돼 최대 9조원이 나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 자금이 모두 환매된다고는 볼 수 없다. 그렇지만 시장 불확실성이 남아 있어 상당 금액이 추가로 환매될 것으로 업계는 염려하고 있다.
김철배 금융투자협회 집합투자산업부 본부장은 "2007년부터 2008년 상반기까지 펀드시장에 몰린 자금 중 많은 금액이 적립식 펀드에 몰렸고 앞으로 이들 펀드의 적립기간 종료 시기가 돌아와 업계에서는 환매 부담을 느끼고 있다"며 "시장의 안정과 장기투자문화 정착을 위해 정부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적립식 펀드 자금의 이탈은 지난달부터 그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금융투자협회가 집계한 7월 적립식 펀드 판매 잔액은 전월에 비해 2조400억원 감소했다. 계좌 수도 1053만7000개로 전달에 비해 32만6000개 줄었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7월 한 달간 코스피가 1700선 위로 상승하면서 투자자들이 수익을 실현하기 위해 대량 환매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며 "남아 있는 자금도 코스피가 1700~1900선에서 유입된 적립식 펀드가 많아 환매 압력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 장기 투자할수록 효과 커=적립식 펀드 가입 열풍이 불기 시작했던 2007년 5월 코스피는 1700선을 넘어섰고 그해 10월 2000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2008년 초 코스피는 1600선으로 급락하기도 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확산되기 전까지는 1700~1800선을 유지했다.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세계 경기가 본격적인 침체에 들어갔던 시기에도 적립식 펀드로는 꾸준히 자금이 유입되다가 2009년 8월부터 판매 잔액이 줄기 시작했다.
만기를 맞아 대부분 투자자들이 환매 결정을 내리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무조건 돈을 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펀드는 만기와 관계없이 운용되기 때문에 만기 이후에도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대세 상승장이 지속되면 현금화하거나 CMA 계좌에 넣어 두는 것보다 훨씬 유리할 수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적립식 펀드 수익률은 양호한 편이다.
펀드평가사인 제로인에 따르면 한국투자삼성그룹적립식펀드와 미래에셋3억만들기인디펜던스펀드 등은 최근 자금 유출 상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동종 펀드의 3년 평균 수익률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매일경제 장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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