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들 금기를 깨다

백화점 건물에는 일반 건물과 견줘볼 때 없는 게 몇 가지 있다. 유리창이 거의 없고 1층에 화장실을 둔 곳도 별로 없다. 심지어 쉴 수 있는 공간도 찾기 어렵다. 상품 진열에 공간을 최대한 할애하려다 보니 생겨난 `전통`이다. 하지만 최근 문을 여는 백화점들이 이런 `금기(禁忌)`를 깨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달 문을 연 롯데백화점 청량리점과 현대백화점 킨텍스점 1층에 가면 화장품, 해외 명품 브랜드들 틈에서 화장실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롯데 청량리점은 1층에 가족 화장실도 뒀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가 함께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성인 좌변기, 아동 좌변기, 유아 기저귀 교환대, 세면대 등을 설치했다. 청량리 민자역사점에 입점한 만큼 열차를 이용하는 가족 단위 고객들이 많이 방문하고 같은 건물에 시네마 등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시설이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두 백화점 측은 "매출도 중요하지만 대(對)고객 서비스를 높인다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핵심요지에 위치한 대부분 백화점이 1층에 화장실을 두지 않았다. 1층은 매출이 가장 많이 나오는 `금싸라기` 공간인데, 화장실을 두면 그만큼 수익이 줄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이 전체 12개점 중 10곳에 화장실을 두지 않는 등 백화점들이 화장실 설치에 인색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 킨텍스점, 롯데 광복점 아쿠아몰 등의 내부 곳곳에 유리창이 설치된 것도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다.

그동안 백화점들은 건물 내부 벽면을 상품진열 등 매출에 기여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유리창을 최소화했다. 고객들이 바깥을 볼 수 없게 해 시간 흐름이나 날씨 변화를 못 느낀 채 쇼핑에만 몰입하도록 한 것이라는 속설도 있다. 그래서 기껏해야 식당에서나 바깥을 볼 수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현대 킨텍스점은 9층 문화센터, 7층 동호회 라운지, 8층 서점 등에 통유리로 된 창문을 뒀다. 광복점 본관과 아쿠아몰을 연결하는 통로는 유리벽으로 구성됐다. 광복점 VIP라운지에도 역시 유리창이 설치됐다.

롯데 청량리점이 에스컬레이터 주변에 넉넉한 휴게공간을 둔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에스컬레이터 주변은 매장에서 고객 발걸음이 가장 많이 닿는 공간 중 하나여서 어느 브랜드나 탐내는 `명당` 자리지만 과감하게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했다.

현대 킨텍스점에는 또 다른 독특함이 드러난다. 백화점 매장 인테리어는 고급스럽고 깔끔한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킨텍스점 4층 영캐주얼 매장에 들어서면 천장에 환기구과 공조설비가 노출돼 있다. 패널 등 마감재로 처리하는 게 당연하지만 `속`이 그대로 보이게 놔 둔 것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백화점 내부는 밝고 화려하고 깔끔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청담동 카페나 홍대 앞 클럽에서 유행하는 인더스트리얼(공장풍) 인테리어를 도입해 젊은 층이 선호하는 분위기로 바꿨다"고 말했다.

보이드(Voidㆍ위아래 층을 뚫어 비워두는 공간)도 점점 늘고 있다. 기존 백화점 내부는 통로를 빼면 빼곡하게 상품으로 차 있다. 하지만 지난해 오픈한 신세계 센텀시티가 3개 보이드를 설치해 `비움의 미학`을 보여준 데 이어 롯데 청량리점과 롯데 광복점이 보이드를 설치하는 등 여유로운 공간 조성에 나서고 있다.

[매일경제 진성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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