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격언에 `그린스펀이 말하면 시장은 듣는다(When Alan Greenspan talks, the markets listen)`는 말이 있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발언이 금융시장에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빗댄 얘기다. 이제는 `버냉키가 말하면 시장은 호응한다`는 말이 또다시 유행할 것 같다.
버냉키 FRB 의장 말 한마디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던 글로벌 증시에 모처럼 생기를 불어넣었다. 소위 `버냉키 풋(Bernanke Put)`이 약발을 발휘한 것이다.
◆글로벌 증시 모처럼 활기=30일 증시에서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1.77%(30.57포인트) 상승한 1760.13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일본 등 다른 아시아 증시도 일제히 상승세로 화답했다. 일본 닛케이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76% 오른 9149.26으로 거래를 마쳤고 중국 1.62%, 홍콩 0.71%, 호주 1.69% 등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 같은 상승세는 버냉키 의장 발언이 촉발시켰다는 데 이견이 없다. 버냉키 의장은 지난 27일 캔자스시티에서 열린 연방준비은행 주최 연례 경제정책 심포지엄 기조연설에서 "디플레이션에 대해 사전적으로 강력히 대처할 것"이라며 "경기 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경제가 더블딥으로 빠지는 것을 수수방관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오태동 토러스증권 연구원은 "버냉키 의장은 수술 없는 재활을 선택했다"며 "적어도 정부 긴축에 따른 더블딥 염려는 크지 않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기 때문에 시장은 이에 적극적으로 반응했다"고 말했다.
◆약발 얼마나 오래갈까?=버냉키 의장 발언이 나온 장소도 발언 의미를 키웠다.
버냉키 의장은 미국 연방은행이 주최한 잭슨홀 회의에서 세계 40여 개국 중앙은행 대표들 앞에서 이 같은 발언을 했다.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중앙은행 개입은 미국 혼자 힘이 아닌 국제적 공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은연중에 암시한 것이다.
글로벌 공조는 외관상 즉시 가동되는 것처럼 보였다. 한국은 29일 부동산 부양책을 발표했고 일본은 30일 중앙은행이 부양적 통화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버냉키 의장 발언 뒤 구체화한 이런 정책적 움직임이 증시 상승폭을 키운 셈이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버냉키 의장 발언이 정책으로 현실화하지 않는다면 `버냉키 풋`이 단기 효과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기도 한다.
특히 FRB가 활용할 수 있는 경기 부양 수단이 많지 않은 점이 문제다. 버냉키풋 효과는 정책적으로 금리정책에 기반하고 있는데 현재 정책금리가 제로 수준이어서 이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국채 매입과 같은 양적 완화 정책뿐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양적 완화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금융시스템이 정상화해야 하는데 지금은 통화 유통 속도 회복 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양적 확대 정책이 효과를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여건"이라고 말했다.
반면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미국 주택시장 하강은 7월이, 고용 감소는 8월이 정점이고 이후 반등 내지 적어도 안정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며 "따라서 미국 경제 단기 조정은 3분기에 일단락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국내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들이 버냉키 효과로 개선된 투자심리로 인해 오랜만에 매수우위로 전환했다. 외국인은 이날 306억원 순매수로 마감했으며 기관도 1354억원 순매수했다. 반면 개인들은 1845억원 순매도했다.
대부분 업종이 상승했다. 특히 증권(3.57%) 철강금속(2.91%) 금융업(2.47%) 등 상승폭이 컸다. `총부채상환비율(DTI) 적용 일시 해제`를 뼈대로 한 부동산 대책 효과로 대림산업과 GS건설은 6% 가까운 상승세를 보였다.
■<용어>
버냉키풋 (Bernanke Put)=원래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이름을 딴 `그린스펀풋(Greenspan put)`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린스펀이 재임기간 중 세계 금융시장에 중요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시장에 개입해 증시를 인위적으로 부양한 것을 비꼰 말이다. 벤 버냉키 FRB 의장도 금융위기 이후 비슷한 부양책을 쓴다는 뜻에서 `버냉키풋`이라 부른다.
[매일경제 김기철 기자 / 이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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