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9월 4일자 경향신문 14면의 머리기사는 우리나라의 기능올림픽 8연패 소식이었다.
영국 버밍엄에서 벌어진 제30회 대회에서 우리나라는 32개 직종에 참가해 27명이 수상하는 성적을 거뒀다. 당시 수상자들의 명단을 살펴보면 대부분 19세에서 21세 안팎의 자동차, 금형, 용접, 전기 등 분야의 현장에서 활동하는 젊은 기능공들이었다. 이들이 우리 산업의 발전을 이끈 첨병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국제기능올림픽은 17세부터 22세까지 청년층이 참여해 자신의 분야에 직업 기능을 겨루는 대회로 2년마다 각 도시를 돌아가면서 개최된다. 1950년 스페인에서 출발한 이 대회는 무역, 기능인과 고등 과학의 표준으로 꼽힌다.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은 이 국제적인 대회에서 최강국이다. 2009년에 캘거리 기능올림픽 우승까지 포함해 통산 16번째의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1989년에 이어 1991년 네덜란드 대회 우승까지 포함한 9회 연속 우승은 어느 나라도 깨지 못한 대기록이다.
스포츠 분야의 금메달리스트들에게는 온갖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지만, 기능올림픽 우승자들에게는 대단한 포상금도 스포트라이트도 없다. 과거처럼 화려한 카퍼레이드나 대대적인 언론보도는 언감생심이다.
오히려 고졸자기 때문에 우수한 기능을 보유하고도 직장에서 홀대받는 것이 현실이다. 올림픽 수상 기록이 있어도 연봉은 대졸자들 보다 1000만원 가량 낮고, 사회적인 인식도 미비하다. 기능인들은 스스로의 기술에는 자부심을 가지지만 낮은 사회적 관심과 기술은 인정하지 않는 현실에는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기술강국의 위치를 미래에도 유지하기 위해서 우수한 기술인력을 양성하는 것은 필수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도 그것을 실현할 손과 발이 없다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유럽, 미국, 일본 등이 각각의 기능 장려 정책을 펼치는 것도 아무리 시대가 변하더라도 기술의 중요성은 변함없음을 인지해서다.
독일의 강소기업, 일본의 초장수 기업, 이탈리아의 명품 모두 기능인들의 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부에서는 뒤늦게나마 기능장려법을 개정하고,기능올림픽 선수촌 개념인 국제기능센터 건립을 계획하는 등 기능 인력 장려 정책을 펼치고 있다. 올해 말부터는 기능올림픽 입상자들에게도 스포츠 올림픽 입상자들과 마찬가지로 병역특례 혜택을 준다.
늦게나마 기능인을 대우하는 제도가 만들어진 것은 기쁜 일이다. 장인정신과 숙련된 기술이 대우받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법과 제도적 지원이 차별을 없앨 수 있는 방편이란 현실은 여전히 씁쓸하다.
이수운기자 per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