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를 사랑할까?` `우리 부장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이 손님은 이 물건에 관심이 있을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갖는 수많은 의문 중 대부분은 `생각을 읽는 것`과 관련돼 있다. 이러한 우리의 생각과 의식을 조절하는 중추기관이 바로 `뇌`다. 생각과 마음이 어디에서 오느냐는 고민은 인간이 자아를 갖게 되면서부터 존재했다. 하지만 이를 지배하는 기관이 뇌라는 사실은 최근에서야 규명됐다.
뇌는 1000억개의 신경세포와 3000억개의 교질세포로 구성돼 있는 복잡한 기관이다. 신체 항상성 유지, 운동, 인지, 기억, 감정, 학습 등 다른 인체기관에 비해 담당하는 역할도 다양하다.
겉으로 보기엔 1.4㎏의 주름이 많은 회백색의 덩어리지만 기능의 다양성과 `소우주`라 불릴 만큼의 구조적 복잡성으로 뇌 연구는 다른 인체기관에 비해 더디게 진행돼 왔다.
하지만 전기생리학 · 컴퓨터과학 · 의학 등 관련 학문의 발전과 기능적자기공명영상(fMRI:functional Magnetic Resonanace Imaging)과 같은 장비의 개발로 `뇌과학`은 진일보하게 된다.
특히 2005년 세계적인 뇌과학 연구자들이 모여 인간의 뇌신경 연결지도를 만드는 휴먼 커넥톰 프로젝트(Human connectome project)를 출범시켰다. 커넥톰이 완성되면 기억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정신질환의 원인을 규명하는 등 미래 뇌과학 연구의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3월 국가수리과학연구소는 커넥톰에서 상반된 주장을 펼쳐 온 뇌과학 전문가를 한데 모아 `휴먼 커넥톰`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며 뇌과학과 IT의 접목을 모색하기도 했다.
뇌과학은 단순히 의학의 영역을 뛰어넘어 IT · BT · NT 등 응용분야가 다양하기 때문에 `엘도라도`로 주목받고 있다.
◇뇌과학 연구의 현주소=선진국에서는 1990년 뇌과학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으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미국은 1990년 `뇌연구 10년(Decade of Brain)`을 선언한 후 이미 2003년 뇌과학 관련 연구 예산이 65억달러(약 8000억원)를 넘었으며 연간 수조원대의 연구비를 이 분야에 쏟고 있다. 국립보건원(NIH)을 주축으로 다양한 산하기관에서 뇌와 관련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MIT 뇌인지과학연구소, 하버드, 보스턴대 등 유수 대학이 뇌과학과 관련한 연구를 수행 중이다.
미국의 이 같은 행보에 자극을 받은 유럽연합(EU)에서도 1991년 `유럽의 뇌연구 10년(European Decade of Brain)`을 선언하고 체계적이고 융합된 뇌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유럽연합 차원에서 2003년부터 2006년까지 3조3000억원에 해당하는 연구기금을 조성해 뇌과학을 비롯한 생명공학 연구에 투자해왔다.
독일의 기초과학 연구 최고 조직인 막스플랑크연구소는 미래 청사진에 정보처리 과정, 신호전달, 인식, 기억, 언어 능력에 대한 연구를 하는 뇌과학을 포함시키고 있다.
일본은 2001년 21세기를 `뇌의 세기`로 발표한 후 이화학연구소 산하 뇌연구종합연구소를 세워 미국과 유럽에 이어 뇌과학 분야를 주도하고 있다. 이화학연구소는 2008년 뇌과학 연구를 핵심과제로 선정해 연간 2조원 이상을 투자키로 했으며, 오키나와 과학기술연구원(OIST)에서 뇌모델링 분야(Computational Neuroscience) 등을 연구 중이다.
이 같은 시류에 발맞춰 우리 정부 역시 1998년 뇌과학 연구에 대한 투자를 본격화했다. 같은 해 뇌연구촉진법이 제정되면서 2007년까지 수행된 1차 뇌연구촉진기본계획에 3096억원을 투자했다. 2008년 시작돼 2017년까지 진행될 제2차 계획에는 1조5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2차 계획에서는 기존 3개 분과 외에 뇌인지과학, 뇌중심융합연구 분야를 신설했으며 학제 간 융합연구를 위한 한국뇌연구원 설립을 추진해 왔다.
또 세계적 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육성사업(WCU) 일환으로 서울대 · KAIST · 고려대 · 이화여대 등에 뇌인지과학 관련 학과와 연구소를 설립했다.
2008년 세계 13위인 우리나라의 뇌 연구 수준을 2017년 세계 7위권으로 향상시키는 데 기여하도록 뇌과학 원천 기술 개발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연구비 투자는 일본의 20분의 1, 미국의 8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또 뇌 전문 연구기관 설립과 같은 가시적 성과를 내는 정책에만 초점을 맞춰 잠재적인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기초연구 지원은 소홀하다는 지적도 있다.
◇뇌과학의 응용 분야=흔히 뇌과학은 치매 · 우울증과 같이 정신질환과 관련한 연구에 가장 많이 쓰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fMRI, EEG와 같은 첨단장비의 발달로 사회 전반으로 응용 분야가 확대되고 있다. 제품의 차별화를 넘어 인간 심리와 행동 양식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진 사회에서 뇌과학은 서비스의 성공을 이끄는 중요 학문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인터넷 업계에서 뇌과학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인간의 두뇌가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잘 파악할수록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생존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검색 서비스인 구글의 창업자 레리 페이지가 뇌과학에 많은 관심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구글의 성공을 이끈 페이지 링크 시스템은 뉴런의 방사형 시스템과 유사하며 인지 과학자들은 구글이 뇌의 특성을 가장 잘 알고 있으며, 인터넷의 미래상을 보여준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최근 구글을 위협하는 차세대 인터넷 강자로 꼽히는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페이스북`도 스탠퍼드 · 하버드 · MIT 출신의 뇌 전문가를 모셔와 인간의 속성을 반영한 서비스로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이외에도 아마존 · 넷플릭스와 같은 기업도 뇌과학 전문가들을 영입해 인간의 사고 방식과 행동을 반영해 최적의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뇌과학은 소비자의 심리를 파악하고 적합한 마케팅을 펼치는 경영 · 마케팅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활용되는 추세다. 포천에서는 2005년 10대 기술 트렌드 중 하나로 뇌과학 활용 마케팅을 꼽으면서 인간의 소비 형태를 측정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뇌과학에 주목했다.
마케팅의 명가로 꼽히고 있는 P&G · 코카콜라 · 유니레버 · 네슬레 · 나이키 · LVMH 등은 소비자의 뇌활동을 직접 분석하고, 이를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접목하고 있다.
이제까지 마케팅 조사에서는 설문조사나 포커스 그룹 인터뷰가 대표적인 기법이었지만 특정 브랜드나 광고에 뇌의 반응을 살핀 후 신제품 출시나 신규 마케팅 전략에 반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P&G는 페브리즈 출시 전 소비자의 뇌 반응 결과를 통해 시장에서 성공을 확신했고, 유니레버는 자사의 초콜릿바 아이스크림이 다른 제품보다 본능적 만족감을 준다는 것을 파악했다. 혼다의 경우 오토바이의 전면부가 `화난 얼굴`일 때 피실험자의 뇌세포가 가장 빠르고 강렬하게 활성화된다는 데 착안해 모델 ASV-3를 출시, 교통사고 발생을 줄이기도 했다.
설문 조사나 포커스 그룹 인터뷰의 경우 응답자가 사회적 인식이나 도덕 관념 등에 따라 자신의 실제 의식과 다르게 대답하는 한계가 있는데 뇌과학을 활용함으로써 이 차이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뇌과학이 펼칠 미래=최근 영화 `인셉션`의 성공으로 과연 타인의 꿈을 제어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또 영화 `아바타`처럼 나의 의식만으로 다른 생명체나 기기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이 가능한지도 관심거리다.
지금까지 나온 의견을 종합한다면 `아바타`는 가능하지만 `인셉션`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아바타를 보면 주인공은 자신의 아바타를 조절하기 위해 자신의 신경세포를 특정 시스템과 연결한다. fMRI 장치로 측정된 뇌신경세포와 인체 내 헤모글로빈 농도와의 상관관계를 규명한 이진형 미국 UCLA 전기공학과 교수는 뇌 작동원리를 파악해 인간의 행동을 조절하는 아바타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뇌가 어떻게 기억을 형성하고 어떻게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지, 또 팔다리나 시청각 등과 관련된 인체기관을 어떻게 제어하는지 밝혀내면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무의식에서 꾸는 꿈은 일반적인 뇌활동과 또 다른 영역이다. fMRI로 꿈을 꾸는 동안 사람의 뇌 활동을 분석할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 꿈에 들어가 꿈을 변형시키는 것은 영화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뇌과학은 그동안 난치병으로 꼽힌 치매 · 자폐증과 같은 중대 뇌질환 치료에도 큰 진척을 가져올 전망이다. 세계적인 외과학 전문가 데이비드 반 엔센 교수는 5년 안에 휴먼 커넥톰 프로젝트의 가시적인 성과를 볼 수 있으며, 10년이면 큰 진전을 이룰 것으로 기대했다. 즉 치매 · 자폐증 · 정신분열증 · 파킨슨병 등 중대 뇌질환의 원인을 규명해 치료법을 찾는 것도 빠른 시일 내 가능해진다는 전망이다.
이수운기자 per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