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하나. 지난 수십년간 존경받는 기업에 늘 이름을 올렸던 GE. 반세기 전인 지난 1959년 GE는 희대의 가격 담합 사건에 연루됐다. 당시 GE의 한 임원이 절연재 가격을 담합하기 위해 랩 인슐레이터를 비롯한 주요 제조사들과 은밀하게 내통해 왔다는 사실이 들통나면서 카르텔의 실상은 전모를 드러냈다.
조사 결과 전기제품 제조사 29곳이 수년간 가격 담합을 해 왔던 것으로 밝혀져 모조리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들은 번갈아 입찰을 따낼 수 있도록 수수께끼 같은 비밀번호를 서로 주고받으며 치밀한 작전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은 지난 1890년대 셔먼 독점금지법이 제정된 이래 발생한 최악의 가격 담합 사건으로 기록됐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담합은 필요악이라는 당시의 통념은 이 사건을 계기로 시장 원리를 무너뜨리는 가장 비도덕적인 행위라는 인식으로 바뀌게 됐다.
사례 둘. 지난 1982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IBM의 산업 기밀을 빼내려던 일본 히타치의 직원 두 명이 미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던 두 회사 사이에선 상상을 초월하는 기업 전쟁이 벌어졌다. 일본 대표 정보기술(IT) 기업이던 히타치는 업계 최고인 IBM의 기밀을 빼내기 위해, IBM은 히타치에 심대한 타격을 가하기 위해 서로 쫓고 쫓기는 격전을 펼쳤다. 사건은 이듬해 2월 히타치와 소속 직원 두 명이 연방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히타치가 톡톡히 망신당한 것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그 전모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일본 언론이 히타치를 두둔하면서 미국의 비열한 술책에 넘어간 희생자로 포장하며 진실을 덮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산업 기밀 전쟁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미국의 경제 전문 잡지 포천은 지난 1930년 창간 이래 세간의 시선을 집중시킨 20가지 스캔들을 선정해 그 흥미로운 뒷얘기를 정리했다. 그 가운데는 전 세계 시장의 경쟁 구도를 뒤바꾼 계기가 됐거나, 심지어 세계 경제 전반을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사건도 있었다. 월가의 유명 펀드 매니저이자 나스닥 회장까지 역임했던 버나드 매도프의 다단계 금융 사기에서부터 세계 최고 에너지 기업에서 부패와 탐욕의 상징으로 전락한 엔론의 파산, 있지도 않은 금광으로 전 세계를 뒤흔든 브리엑스의 사기 사건에 이르기까지 다시 봐도 충격적이다. 그러나 그 흥미로운 뒷얘기들을 읽다 보면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경우가 적지 않다. 추악한 경제 사건은 끊임없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지. 그것은 인간의 탐욕이 시대를 막론하고 변함없는 탓이다.
책이 열거한 20가지 스캔들은 사건 그 자체로만 끝나지 않았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유사한 피해를 막기 위해 여론은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냈고, 수많은 경제 원칙과 법규도 탄생시켰다. 이들 사건이 지금 세계 경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유다.
그러나 책은 과거의 경제 스캔들을 흥미로운 가십거리 정도로 치부해선 안 된다고 경고한다. 여전히 우리네 삶에 피해를 줄 수 있으며 인간의 탐욕스러운 본성이 변하지 않는 한 부정부패는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포천 편집부 지음. 김선희 옮김. 서돌 펴냄. 1만6000원.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