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포커스]계산과학

KIST 계산과학센터와 서울대학교, 브라운대학교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나노구조 표면제어 기술 연구 개념도
KIST 계산과학센터와 서울대학교, 브라운대학교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나노구조 표면제어 기술 연구 개념도

인간의 눈으로 원자를 직접 볼 수 있는 기술은 아직 없다. 각종 최첨단 전자 현미경이 발달했지만 거기까지는 못 미치고 있다. 이 때문에 원자 단위의 과학 연구를 하는 데는 상당한 비용이 든다.

`계산과학`은 이러한 가상의 원자, 즉 원자의 `아바타`를 통해 원자의 움직임과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과학 분야다. 새로운 무언가를 개발하는 성과를 내는 분야는 아니지만 각종 기초연구 및 응용연구 과정의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보다 우수한 결과를 이끌어 내는 `숨은 공신`이다. 그래서 `실험실 내의 실험실`로 불리기도 한다.

계산과학에는 당연히 고도의 계산을 해내는 슈퍼컴퓨터가 필수다. 슈퍼컴은 연구 그룹 단위에서 사용하기에는 고가다. 그래서 주로 `클러스터 컴퓨팅(Cluster Computing)` 방식을 사용한다. 이는 많은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가 하나의 일을 위해 작동하는 것으로, 억 단위의 원자 활동을 계산해내기 위해선 500~1000개의 CPU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국내 유일 KIST 계산과학센터=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한홍택)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센터 단위의 계산과학 연구소를 2007년 3월 발족해 운영하고 있다. 이광렬 계산과학센터장은 “계산과학을 통해서 1억~10억개의 대규모로 이뤄지는 원자 간 상호작용을 계산과학을 통해 효율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됐다”며 “연구자들이 어떤 공정을 개발할 지에 대한 예측 가능성도 높여준다”고 설명했다. 센터가 중점을 맞추고 있는 분야는 나노로, 2014년까지 나노바이오 분자 시뮬레이션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 연구그룹에 진입한다는 목표다.

센터의 계산과학을 적용해 연구하고 있는 응용 분야는 세 가지다. `분자 도킹코드 개발 및 응용` `나노박막의 원자구조 및 전자구조 해석` `금속원자가 도핑된 나노구조 표면제어 기술` 등이다. 특히 이 중에서도 나노구조 표면제어 기술은 컴퓨터를 이용한 계산에서 원리 규명, 응용 연구까지 `뿌리기술-줄기기술-열매기술`로 하나로 연결되는 연구과정이다.

우선 센터가 계산과학을 이용해 표면나노구조 실험 모델링 및 시뮬레이션을 한다. 그 다음은 임지순 서울대학교 교수팀이 계산과학의 결과에 기반 각종 화학적 · 물리적 원리를 규명한다. 응용연구로 나아가기 위한 기초단계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김경섭 미 브라운대학교 교수팀이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친환경 필터 · 2차전지 · 수소저장재료 등의 핵심 기술을 구현해 낸다. 이미 국내기업에 `나노스폰지` 기술을 이전하는 데 성공하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토종닭`이라고 명명한 분자도킹 코드도 흥미롭다. 원자 혹은 분자가 단백질과 어떤 상호작용을 진행하는지를 계산과학으로 규명, 이를 `코드화`하는 연구다. 이 센터장은 “단백질의 문제가 되는 부분을 도킹을 통해 메우는 등 신약개발에 유용하게 쓰인다”며 “또 혈액 속 물질과 나노바이오 물질의 상호작용을 규명해 각종 나노바이오소자 개발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방법론`에 대한 인식 제고 필요=아직 우리나라의 계산과학 인프라는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처져 있다. 미국은 핵무기 및 우주산업 개발을 위해, 일본은 자연재해 시뮬레이션을 위해 일찌감치 슈퍼컴퓨터 개발을 해왔고, 이는 각종 기초 및 응용연구에도 널리 쓰이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KIST를 제외하곤 아직은 소규모 그룹 단위로 계산과학을 연구하고 있는 수준이다. 가시적 성과에만 주목하고 그 과정상의 방법론을 홀대하는 사회 분위기도 문제다.

이 센터장은 “인프라와 함께 다양한 분야의 연구진이 대규모로 협업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재한 것도 계산과학을 더디게 하지만, 연구의 결과와 함께 과정에 주목하는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응용연구의 수준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아직 `블루오션`인 계산과학에서 충분히 세계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 센터장은 “반도체 · 조선 · 자동차 등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리드하고 있는 산업분야에서 계산과학을 통한 혁신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