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벤처캐피털(VC) 시장에 봄이 왔다. 수요 증가 등 경기 회복 신호에 VC가 투자를 확대하면서 완연한 회복세를 경험하고 있다.
특히 VC가 기존 정보기술(IT) 중심 벤처 투자와 함께 청정기술, 생명과학 등 새로운 분야에 뭉칫돈을 쏟아붓자 신생 기업이 들썩인다. 여기에 VC들이 투자비를 인수합병(M&A), 기업공개(IPO) 등의 수단을 통해 회수하는 자본회수시장(엑시트마켓)이 활성화하면서 재투자가 지속되는 선순환 체계가 가동될 것으로 기대된다.
◇2009년 2분기부터 회복세=미국의 VC 투자는 지난해 2분기부터 회복 국면을 맞이했다. 미국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벤처 인증 제도가 없다. 구글에 투자해 성공한 것으로 유명한 세콰이어펀드(Sequoia Fund) 등과 같은 VC들이 투자한 기업을 `벤처-백드 컴퍼니(venture-backed company)`라고 부른다. 정부의 인증을 통해 지원을 받는 형태가 아니라 VC들이 면밀한 조사와 검토 후에 위험을 감수하면서 잠재력 있는 신생 기업에 투자하는 형태다.
VC들이 움직이면서 지난해 1분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여파로 투자 금액이 절반 가까이 줄었던 미국의 VC 투자가 서서히 늘었다. 올해 1분기에 소폭 감소하기도 했지만 2분기에 34% 늘어나면서 총투자액이 65억달러를 기록했고, 투자 건수는 22% 늘어난 906건을 기록했다.
2분기 VC 투자가 크게 늘면서 상반기 전체로는 투자액이 총 114억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88억달러)보다 49%나 급증하는 모습을 보였다. 투자 건수는 1646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340건보다 22% 늘었다.
트레이시 T 레프터로프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 글로벌매니징파트너는 “분기 총 투자 금액이 60억달러를 넘어선 것은 2008년 3분기 이래 처음이고 거래 건수도 2008년 4분기 이래 가장 많은 수캇라며 “VC들은 경기를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올해 전반적으로 투자 상승을 목격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청정기술이 VC 투자 견인=청정기술 업계의 큰 성장 가능성이 VC들의 대규모 투자를 불렀다.
대체에너지, 공해방지 및 재활용 등 청정기술 부문에 대한 올해 2분기 투자는 1분기의 두 배가 넘는 15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나타냈다. 투자 건수는 1분기 70건보다 1건 늘어난 71건이었다. 즉 대규모 투자가 몰렸다는 것이다. 2분기에 집행된 VC 투자 중 가장 큰 규모 7건이 청정기술 관련 기업에 몰렸다. 또 지난 15년 동안 이뤄진 모든 투자 가운데 네 번째로 큰 규모의 투자 역시 청정기술 기업에 돌아갔다.
생물공학 부문 역시 1분기보다 59% 늘어난 13억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했고, 건수는 34% 증가한 139건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의료기기 업계에 대한 투자가 금액과 건수 모두 40% 이상 늘어난 7억5500만달러, 95건이었다.
소프트웨어 부문에는 전 분기보다 43% 늘어난 10억달러가, 인터넷 기업에는 총 212건에 8억7900만달러가 투자됐다.
총 17개 부문 가운데 11개 부문이 2분기에 투자 금액 증가를 경험했다. 컴퓨터와 주변기기(48% ↑), 소비자 제품과 서비스(44% ↑), IT서비스(28% ↑) 등이었다. 투자가 줄어든 부문은 반도체(40% ↓), 금융서비스(22% ↓), 통신(27% ↓) 등으로 나타났다.
업체별로는 친환경자동차 관련 업체인 베터플레이스가 2분기에 3억5000만달러를 투자받아 가장 큰 규모를 기록했다. 두 번째 규모 투자 역시 청정기술로 태양광에너지 관련 기업인 브라이트소스에너지(1억5000만달러)에 돌아갔다. 이어 데이터분석 소프트웨어 기업 팔란티르테크놀로지스가 9000만달러를 유치했고, 나노기반 PV기술기업 스션코퍼레이션과 리튬이온 배터리 기업 보스턴파워가 각각 7000만달러와 6199만달러를 받았다.
이밖에 웹 애플리케이션 개발업체 캐스트라이트헬스가 6000만달러, 전기차 업체 마일스일렉트릭비히클스가 5697만달러, 태양광 전기업체 선런이 5500만달러였다.
IT기업의 본산 실리콘밸리에도 VC 투자가 대폭 늘어났다. 실리콘밸리 지역 청정기술과 생명과학 기업에 투자가 몰리면서 실리콘밸리를 포함한 캘리포니아 베이에어리어 지역은 2분기 미국 VC 투자 65억달러 가운데 45%인 29억달러를 차지했다. 이는 전 분기에 총 49억달러 가운데 32%를 차지했던 것과 비교된다. 최근 몇 년 간 이 지역은 미국 전체 VC 투자의 30~40%를 유치해 왔는데, 올해 들어 대폭 늘어난 것이다.
베이에어리어의 29억달러 투자금 유치 규모는 전 분기보다 91%, 전년 동기보다 100% 늘어난 것이다. 또 2분기 10대 대형 투자건 가운데 7건이 베이에어리어 지역에 집중됐고 가장 규모가 큰 투자금을 치했던 베터플레이스 역시 이 지역 기업이다.
◇자본회수도 활발=VC들이 투자를 통해 이익을 얻는 `자본회수`도 활발했다. VC들이 그만큼 많은 현금을 확보했다는 의미로 향후 VC 투자가 더 늘어날 것을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일반적으로 VC들의 자본회수 활동은 M&A나 IPO를 통해 이뤄진다. 그 가운데서도 올해 2분기 17개 기업이 IPO를 했고 전체 IPO의 가치는 13억달러에 이르렀다. 이는 건수나 금액 면에서 지난 2007년 4분기 이래 최고치다. 17건 가운데 4건이 인터넷 관련 기업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M&A는 92건이 성사됐다. 인수 금액이 밝혀진 22건의 가치는 29억달러였다. M&A를 주도한 것은 IT부문이었다. IT 관련 기업 M&A는 건수 78건에, 공개된 총 금액은 24억달러였다. 구체적으로 인터넷과 컴퓨터 소프트웨어 기업이 각각 35건과 29건을 기록했다.
가장 규모가 큰 거래는 구글이 VC지원업체 애드몹을 인수한 것으로 7억5000만달러 규모였다.
마크 히센 미국벤처캐피털협회(NVCA) 대표는 “자본회수 시장이 살아나는 신호를 보임에 따라 VC들이 새로운 투자를 늘리고 있는 것”이라며 “청정기술과 생명과학 등 새로운 분야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는 것은 신생기업과 산업 발전에 큰 계기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황지혜기자 goti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