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기파(EMP) 공격은 현대사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전기시설망과 사이버 기능을 일시에 무너뜨릴 수 있어 국가 생존에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 핵 공격 가능성은 더 이상 우려되지 않지만 여러 국가가 전기시설망에 잠재 재앙과도 같은 EMP를 발생시킬 수 있는 고도 미사일을 보유하고 실험을 감행하고 있다. EMP 공격 가능성이 증가하고 있지만 이 대비는 부족하다.” 이베트 클라크 미국 하원 사이버안보과학기술소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미국 하원의 사이버테러 청문회에서 제기한 내용이다.
EMP를 이용한 공격이 단순한 꿈이 아닌 현실이 됐다. EMP 공격은 핵탄두나 전자기파 폭탄(EMP탄) 등을 투하해 공중에서 강력한 전자파를 일으킨다.
이 전자파가 미치는 반경 내에 있는 발전소를 포함해 자동차와 전화, 컴퓨터 등 전자장비를 이용하는 기기들을 일시에 마비시켜 통신이나 지휘 통제가 불가능한 `암흑 상황`을 발생시키는 데 이용한다. 보다 실감나게 표현하자면 라디오와 TV, 네트워크, 교통제어시스템, 식량 · 물 공급시스템, 전화망, 전력망, 금융시스템, 컴퓨터회로망, 산업 시설 등 모든 인프라가 다 망가진다.
◇HPM을 발산하는 EMP탄=EMP 공격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기존 핵폭탄 폭발력을 이용해 강력한 전자기장을 일으키는 방법, 또 하나는 로켓 등 발사체에 폭약과 함께 안테나, 전자파 발생 장치와 증폭 장치 등을 달아 공격 목표에 근접 후 폭발시켜 순식간에 고출력 마이크로파(HPM)를 발산하는 EMP탄이 있다.
군사용 EMP탄은 인명 피해 없이 지하 수십미터 깊이의 핵시설 기폭 장치나 미사일 유도장치 등 전자기기를 무용지물로 만든다. 전문가들이 한반도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응할 최첨단 전력으로 꼽는 이유다.
공격이 가능한 이유는 전력선 통신과 이를 이용하는 기관, 나아가 기기 등 전력 송배선 시설과 전력IT가 모두 UEN(Ubiquitous Electricity Network)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발전소와 송전 · 배전 시설, 전력 소비자를 망으로 연결해 양방향으로 전력정보를 공유하는, 즉 전력시스템 전체가 한 몸처럼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스마트그리드시대가 오면 주요 시설은 물론이고 개인 생활에까지 치명타를 안길 수 있다.
EMP 공격은 영화와 게임 등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흥미를 배가시키는 주요 소재로 사용돼 왔다.
e스포츠 분야에서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타크래프트를 예로 들어보자. 테란과 저그, 프로토스 3개 종족이 전쟁을 벌이는 이 게임에서 테란이 보유한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가 사이언스 베슬의 `EMP 쇼크`다. EMP 쇼크를 입은 상대 유닛은 일시적으로 혼란 상태에 빠지고 각종 무기 사용에 제한을 받게 된다. 또 프로토스의 최강 유닛인 아칸 역시 번개를 연상케 하는 강력한 EMP를 무기로 사용한다. 워쇼스키 형제의 흥행작인 영화 `매트릭스-에볼루션`의 마지막 장면에는 기계 유닛의 대규모 공격을 일시에 무력화시킨 강력한 방어무기로 등장했다. 짧고 강력한 EMP를 발사해 인근 기계 유닛의 전기전자적 기능을 일시에 무력화시키는 방법이다.
◇현실에서 어디까지 왔나=공식화된 사항은 아니지만 과거 이라크전에서 미군이 이라크 군부와 방송사, 주요 시설을 상대로 이 무기를 실험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전자파 및 군사 전문가들은 비핵 전자기파무기(NNEMP)가 아직까지 실제 사용과 그 성능이 공식 보고되고 있지는 않지만 무기로 사용할 만한 수준의 기술 개발은 이미 이뤄졌다고 본다.
군사용 EMP 연구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0개국 이상이 고공 폭발 전자파 펄스(HEMP) 시뮬레이터를 개발해 EMP 발생 및 효과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 들어서는 급준(fast-rise) HEMP가 전자제품에 미치는 영향연구가 본격화됐고 최근에는 미국과 독일 등 유럽, 러시아를 중심으로 레이더, 은닉물 탐지, 전자전 등 국방용과 더불어 EMI시험, 지질학 등 민수용까지 다양한 전자기파 소스가 개발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중 공격 무기로 확인된 것은 미국이 2010년을 목표로 피해 반경이 6.8㎞에 이르는 EMP탄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내에서는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중심으로 고출력 전자기 펄스의 발생 및 응용연구를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ADD는 지난해 폭발 반경 100m 이내의 전자기기 및 장비를 무력화시키는 EMP탄을 개발해 선보였다. 또 포항가속기연구소는 지난 2008년까지 4년여 동안 3개 주파수 대역의 HPM 소스 개발 연구를 수행했다. 전기연구원은 지난 2006년 1GW급 UWB(Ultra WideBand) 발생장치를 개발했고, 현재는 전도성 HEMP 보호장치 연구를 수행 중이다.
◇국내 기술력 확보 시급=군사 안보나 우주 항공은 물론이고 환경 등 산업 적용 면에서 중요 기술이지만 국내 EMP 관련 기술은 선진국과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각국의 디지털 전력기기의 전자파 보호규격이 계속해서 강화되는 추세지만 고난도 기술이라는 점 때문에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EMP 관련 기술은 미국을 중심으로 유럽과 일본이 주도하고 있다. 국제특허를 확보한 EMP로부터의 보호 기술 24건과 고전압 펄스를 이용한 UWB 발생 및 부속 기기 43건 중 미국이 67%를 차지한다. 지난 2000년 이후부터 EMP 관련 특허건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상황이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경우 초기 기술이라 할 수 있는 나노초 펄스전압 발생기 관련 국내 특허가 40여건 등재돼 있지만 그것도 대부분이 UWB 통신 및 안테나에 관한 특허고 UWB 전자파 시뮬레이터에 관련된 특허는 없다.
임근희 전기연구원 전기추진센터장은 “EMP 관련 첨단기술은 미래 신성장동력인 항공우주, 환경 분야에 적용해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방기술에서는 전력시스템용 기기의 전자파 안전성 확보로 전력망 기반의 국가 인프라 전반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동식기자 dsl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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