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보라매병원은 이전에 비해 각종 암 오진 비율이 확 줄었다. 바로 간암 · 폐암 · 대장암 등 각종 암 진단에 사용하는 `4D PET/CT` 장비 덕분이다. CT는 엑스선을 활용해 인체 내부를 단면으로 잘라내 영상화하는 장비. 인체 횡단면을 따라 검사 장비를 360도 회전해 투과된 엑스선 양으로 신체 내부 각 부위 상태를 보여 준다. 역시 검진 장비인 PET는 양전자를 방출하는 방사성 의약품을 몸속에 주입 후 조직 기능과 생화학적 대사 상태를 검사한다. PET는 몸속 조직 기능을 면밀히 살필 수 있지만 병이 발생한 부위를 확실하게 집어내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이를 보완한 장비가 바로 CT를 장착한 PET 즉 `PET/CT` 장비다.
의료 기술이 발달했지만 이전까지 이들 장비는 3차원 입체(3D)가 최고 수준이었다. 평면(2D)에 비하면 3D는 훨씬 진보한 기술이지만 한계가 있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신체 움직임을 감지하는 데는 무리였다. `시간` 개념이 빠졌기 때문이다. 보라매 병원에서 사용 중인 장비는 3D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4D PET/CT 장비다. 호흡 진행이나 혈류가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빠르게 흘러가는지 등 시간 경과에 따른 신체 변화를 보여준다. 그만큼 정확한 검진이 가능하다.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몸의 신진대사를 한눈에 보여줘 오진 비율을 크게 줄인 것이다.
의료계에도 `4D 물결`이 거세다. 디스플레이 업계에서 4D는 3차원 영상에 후각 · 미각 · 청각 등을 보태 오감으로 실감나게 감상할 수 있는 영상물을 뜻한다. 반면에 게임 · 건축 특히 의료 분야에서 4D는 3차원 영상 이미지에 `시간`을 입힌 것이다. 즉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장소나 이미지가 변하는지 생생한 입체 영상으로 보여 준다는 개념이다. 가령 건물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을 시뮬레이션한다든지, 혈류가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빠르게 흘러가는지 등 시간 흐름에 따른 변화를 보여준다. 이호영 보라매병원 교수(핵의학과)는 “의료 장비와 소프트웨어 중에서도 3D가 접목되지 않은 분야가 많지만 인체를 다루는 의료 분야 특성상 4D 기술이 훨씬 더 빨리 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필립스는 이미 `4D TOF(Time of Flight)` 기술을 적용한 PET/CT 장비를 내놨다. 주로 암과 심장 질환 검사에 쓰이는 PET/CT는 종합 병원의 필수 의료기기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4D 기술을 접목한 이 장비는 다른 진단기기에 비해 암과 심장 질환 등을 조기에 발견하고 정확한 해부학적 위치를 알 수 있다. 치료 경과를 살펴보는 데도 유용하다. 특히 암 추적 검사에서 재발 또는 전이 여부를 쉽게 판별할 수 있다. 환자 호흡 주기에 따른 움직임을 측정해 오류를 줄이고 기존보다 짧은 시간 내에 정확한 진단 정보를 제공한다. 여기에 방사선 노출을 줄여 환자의 편의도 대폭 개선했다.
GE헬스케어도 심장 초음파 진단기기 `비비디 E9`를 선보였다. 이 제품은 심혈관 진단 통합솔루션으로 4D 기술이 기본이다. 심부전 · 선천적 심질환 환자의 심실을 4D 입체영상으로 볼 수 있다.
사실 4D 의료장비는 앞선 3D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3D 기술도 초기에 비해 빠른 속도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내시경을 삽입하지 않고도 CT로 대장 내부를 촬영해 3차원 영상으로 보는 가상 대장 내시경, 뱃속 태아의 얼굴을 입체 영상으로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초음파는 이미 의료계의 대세로 굳어졌다.
필립스가 내놓은 3D 경식도 초음파 장비는 4D에 가까운 기술이라는 평가다. 이 장비는 관상동맥질환, 심부전, 심장판막증, 선천성 심질환 등 다양한 심장 질환과 심장의 변화 양상을 3D로 보여준다. 내시경처럼 식도를 통해 초음파 탐촉자를 넣어 더욱 가까운 위치에서 심장을 촬영해 구조 · 크기 · 움직임 · 기능 등을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정확도가 높아졌다.
혈관에 가는 관을 넣어 엑스선으로 뇌신경부터 흉부와 복부, 사지 혈관 등 인체 내 모든 혈관의 막힘 정도를 확인하는 조영술 장비도 3D가 접목되면서 훨씬 정확한 진료가 가능해졌다. 엑스선 튜브와 검출기로 영상을 획득한 후 이를 3D 영상으로 재구성해 치료 과정을 먼저 시뮬레이션해보고 최선의 치료 방법을 결정할 수 있게 됐다.
산업계에서는 3D와 4D 의료 장비가 올해를 기점으로 크게 늘어나면서 조만간 전체 시장의 주류로 떠오를 것으로 낙관했다. 세계 의료기기 시장은 오는 2012년까지 연평균 6.2%로 성장할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에스피컴이 68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시장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의료기기 시장 규모는 올해 2353억달러에서 내년 2501억달러, 2012년 2660억달러를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3D를 포함한 차세대 실감 의료 장비 성장률은 30% 가까이 치솟을 것으로 낙관했다. 김태영 필립스전자 대표는 “3D에 이은 4D 장비가 나오면서 신체 내부의 각 부위를 마치 손에 잡힐 듯한 입체 영상으로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며 “그만큼 보다 신속하고 정밀한 진단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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