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새치기입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이렇게 한 시간도 넘게 줄을 섰는데 새치기라니요?” “아주머니, 지금 아주머니 혼자 줄을 서 계시고 거기에 가족이 세 명 끼어들었는데 이게 새치기가 아니란 말입니까?” “왜 새치기예요? 내가 가족을 대신해서 줄을 섰으니 새치기가 아니죠.” “그렇다면 만약에 가족이 한 열 명 정도 되어서 우르르 줄에 끼어들게 되는 경우는 어떻습니까?”
장원호 서울시립대 교수(도시사회학과)가 딸과 함께 간 놀이공원에서 벌이곤 하는 말다툼(174~176쪽)이다. 오가는 말이 이쯤 되면, 아주머니는 늘 논리적이지 않고 감정적으로 반응하더란다. 얼굴을 붉히고 목소리를 높이는 모양이다. 장 교수는 놀이공원에 갈 때마다 초등학교 1학년인 딸로부터 “아빠, 오늘은 제발 놀이공원에서 싸우지 마세요”라는 말을 듣고도 항상 싸울 수밖에 없어 안타까웠다.
장 교수의 눈에 띈 `놀이공원에서 혼자 줄을 선 아주머니` 열에 여덟이나 아홉이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는 상황이었다. 가족이 다른 놀이기구를 탈 때 아주머니 혼자 다른 기구에 줄을 선 뒤 그 기구를 탈 때쯤 되어 남편과 아이들을 전화로 불렀다는 것. 이게 새치기인가, 아닌가. 한국 고유의 따뜻한 인정(人情)에 비춰 `그 정도는 봐줘도` 되는 건가. 아니, 새치기 맞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189~193쪽)`이 왜 `확신 게임`으로 바뀌어야 할지 꼭 곱씹자. “불신이 많은 상황에서 개인이 합리성을 추구할수록 그 집합적 결과는 비합리적이고, 결국 사회 전체에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 있기(192쪽)”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이제라도 우리 실정에 맞는 규정을 정확히 정하고 한 번 정한 규정은 `공정`하고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적용해야 한다(195쪽).” 이를 몸소 체험해 깊이 알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기에 매우 안타깝지만, 그나마 바뀔 기미가 보여 기껍다. 때때로 가는 놀이공원에서 얼마 전부터 “가족 대표로 혼자 줄을 서면 안 된다”는 안내방송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황우석 사태는 왜 일어났을까. 한국 과학기술자가 지배권력의 일원(엘리트)으로 들어갈 기회가 열린 이유는 또 무엇일까(285~288쪽). 김환석 국민대 교수(사회학과)는 “우리나라 지배권력은 줄곧 성장주의 이데올로기를 추구하면서 이에 부응하는 전문가 집단의 권위적 담론만을 채택하는 태도를 고집한다. 바로 이게 우리나라에서 과학기술의 윤리의식 부재와 그 결과로서 위험의 심화가 초래되는 원인(295쪽)”이라고 풀었다.
시장과 기업에도 공공적 도덕성을 불어넣을 때다. 박병진 성균관대 연구교수(서베이리서치센터)가 말하듯 “도덕성은 단순히 `시장 내부의` 도덕성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 체제의 민주적 질서 형성에 필요한 자원(255쪽)”이다. “과거에는 도덕성이 실추됐더라도 정권은 형식 민주주의 베일 뒤에서 권력과 이해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266쪽).” 지금은 다르다. “형식적으로 획득한 권력일지라도 권력의 유지는 권력을 장악한 집단이 도덕적으로 얼마나 정당하며, 진정성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렸다(267쪽).”
따로 모여 친하고 친하지 아니한 사람을 제멋대로 가려가며 권력을 사유화했던 그 그늘지고 축축한 곳에서 박차고 나오시라.
김광기 · 김용학 · 김호기 · 김환석 · 박병진 · 윤정구 · 이재혁 · 이희영 · 장원호 지음. 동아시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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