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기업 히타치
100년. 기업에 있어 100년은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한 세기를 관통하며 발전하는 것은 모든 기업의 꿈이자 모토다. 일본 히타치제작소는 지난 7월 100주년을 맞았다. 극소수의 기업에만 허용되는 `센추리클럽`에 가입하는 순간이었지만 히타치는 조용히 100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100년보다는 앞으로의 100년을 생각하는 지극히 일본 기업다운 조심스러운 접근이었다. 일본 제조산업의 상징인 동시에 이른바 `일본 국민기업`으로 통하는 히타치의 100주년 현장을 다녀왔다.
지난 7월 22~23일 `히타치 u밸류 컨벤션 2010` 전시회가 열린 일본 도쿄국제포럼 전시장. 행사장 곳곳에 내걸린 창립 100주년 로고마크가 회사의 100주년을 알렸다.
u밸류 컨벤션은 히타치의 정보통신사업부문을 중심으로 15년 전 `IT컨벤션`으로 시작된 행사다. 6년 전부터 히타치의 광범위한 사업군을 반영하기 위해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지난해부터는 아예 그룹 차원의 전시회로 규모가 확대됐다.
u컨벤션은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히타치의 유일한 공식 기념행사다. 기자를 안내한 히라노 도모키 홍보부장이 “창립 기념일이었던 7월 16일에도 별다른 행사 없이 보냈다”며 “올해 100주년과 관련된 공식 행사는 u밸류 컨벤션뿐”이라고 말했다.
창립 100주년이라면 요란한 한 해를 보낼 법도 하건만 뜻밖이었다. 한국 기업이 창립 10년 단위로 기념행사를 여는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지난 2년간 실적 부침을 겪은 영향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100주년을 자축하는 자리가 아니라 다음 100년을 준비하는 기회로 삼자는 의지에 따른 것이다.
이는 전시장에서도 보여졌다. 입구에 소규모로 마련된 100주년 기념관 외에 별다른 100주년 기념 이벤트는 열리지 않았다.
전시장은 100주년을 홍보하기보다는 히타치의 광범위한 제품군과 기술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방송용 카메라에서 전력 · 철도시스템, 서버 · 스토리지, 로봇, 기업용 소프트웨어, TV 등 전시품의 종류만 놓고 보면 세계 최대 규모 전시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관람객은 특이하게도 외부 협력사나 고객보다는 히타치 직원들이 주를 이뤘다. 행사장에서 만난 히타치와 LG의 합작사 LG히다찌의 이혁근 도쿄지사장은 “기술을 외부에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임직원들 스스로 회사에 대한 자긍심을 키우고 더 많은 것을 알아가는 것이 u밸류 컨벤션의 목적”이라고 귀띔했다.
겉모습보다는 본연의 경쟁력을 중시하는 기본 사상은 최근 몇 년 사이에 형성된 것은 아니다. 히타치는 1910년 설립 이후 `뛰어난 기술 · 제품 개발을 통해 사회에 공헌한다`는 창업이념을 모토로 삼아 지난 100년을 보냈다. 회사의 목적은 사회 공헌이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은 기술력이다.
이 같은 히타치의 기본 정신은 창립 초기 일화에서 엿볼 수 있다. 1923년 9월 일본 관동대지진이 발생했다. 10만명 이상이 사망했고, 인근 산업기반은 완전히 붕괴됐다.
당시 변전 · 변압기를 생산하던 히타치는 다행히 지진지역에서 떨어져 있어 피해를 면할 수 있었다. 자연스레 일본 전역에서 히타치에 제품 주문이 쇄도했다. 서로 자기네 지역에 제품을 먼저 공급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그때 오다이라 나미헤이 히타치 창업주는 “우리 히타치는 일본의 히타치다. 피해지역 부흥이 제1의 임무다. 다른 지역에 제품을 공급하지 말고 피해지역에 제품을 우선 공급하라”고 지시했다.
히타치는 피해지역에 제품 공급을 집중했다. 그것도 기존 가격보다 더 싸게 공급했다.
결과적으로 히타치는 이른바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일개 지역기업이 아닌 일본 국민 기업으로 위상을 높일 수 있었다. 인지도가 향상되고 회사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졌다.
이후 히타치는 `제작소`라는 사명 그대로 모든 것을 손수 제조 · 생산하는 연 매출 9조엔(약 125조원) 규모 기업으로 성장했다.
히라노 부장은 “히타치의 목적은 과거나 지금이나 사회공헌”이라며 “만든 물건을 파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고객만족, 새로운 서비스로 고객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히타치가 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쿄(일본)=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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