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메가트렌드/ 전문가 지상 좌담회
다가올 2020년을 대비하기 위해 국내 정부와 IT업계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어떤 트렌드에 주목해야 하고, 어느 지점에 전략적 역량을 집중해야 할 지 판단이 쉽지 않다. 더욱이 미래전망은 틀릴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미래 예측은 그 정확성 때문이 아니라 대처 능력을 키우고 유연한 대응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전문가들은 5년 후를 전망하기 위해 5년 전을 되돌아보는 일은 넌센스라고 말한다. 사회 변화 폭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 5년 후를 보기 위해서는 15년 전을, 10년 후를 예측하려면, 20년 전으로 되돌아갈 것을 주문한다. 1990년대부터 2020년까지 IT산업의 과거, 현재, 미래를 전문가를 통해 조망했다. 6명의 IT 및 미래전문가를 대상으로 가진 인터뷰를 지상 좌담회로 엮어 봤다. <편집자 주>
<참석자>
김진화 서강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김홍선 안철수연구소 대표
석준형 삼성전자 고문
송인혁 TEDx Seoul 에반젤리스트
원광연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원장
장동인 미래읽기컨설팅 대표
◇향후 10년에 대한 정부나 기업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2020년 IT 키워드는 무엇이라고 보나.
△석준형 삼성전자 고문=중단없는 네트워크(Seamless), 융합과 다변화(Convergence&Divergence), 무선(Wireless), 유비쿼터스(Ubiquitous), 가상현실(Vitual Reality) 등이 주요 키워드를 이룰 것이다. `Seamless`는 기기 간, 수단 간 경계가 없어지는 트렌드로 TV와 PC, 통신, 방송, 인터넷의 통합 등을 주도할 것이고, Convergence&Divergence로 정보기기들의 통합과 다변화가 더욱 활발하게 이뤄진다. 무선 환경의 진화는 언제 어디서나 무선으로 연결되는 환경이 실현되며 단말기의 경우 코드없는 모바일 디바이스(Cord-less Mobile Device)가 등장할 것이다. 또 2개월 사용가능한 배터리, 초저소비전력 디스플레이의 등장으로 무선 충전이 가능한 전력선없는 디바이스가 가능할 것이다.
△김홍선 안철수연구소 대표=사회 진화에서 IT정보화를 통해서 디지털화되는 것이 1단계라면, 지식을 이끌어내고 스마트화하는 것이 현 단계이고, 어디엔가 존재하는 개인 및 각종 정보를 의미있게 하고 활용하는 문제가 IT 미래상이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스마트, 소셜, 글로벌화, 보안, 그린 등이 주요 키워드로 꼽힌다. 스마트는 IT시장 주도권이 전문가 중심에서 일반인으로 이동하는 것을 추동할 것이며, 소셜은 갈수록 일반인의 파워가 증대되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된다. 점차 에코 시스템이 로컬 차원이 아닌 글로벌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송인혁 TEDx Seoul 에반젤리스트=2020년은 디바이스가 내 손에 없는 세상이 될 것이다. AM OLED를 생각해 보면 분명하다. 투명하고 휘어지고 전력 소모가 적다. 수명과 크기 문제만 해결되면, 지금의 TV와 같은 디스플레이 모습에 벗어나게 된다. 벽이건 어디건 모든 것이 거대한 스크린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이 얘기를 나누는 커피숍 테이블 옆의 벽이 화면으로 변해 함께 자료를 보며 일할 수 있게 되고, 멀리 있는 사람과의 화상 회의도 가능하다. 이 화면이 3D HD 화면을 구현한다고 생각하면, 결국 모든 공간이 가상공간이고, 모든 가상공간이 현실이 된다. 거리의 제한도 없어진다. 스크린이 새로운 공간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온 홀로그램과 터치 기술은 이미 구현된 기술만 못하다. 현실이 상상을 뛰어넘고 있다.
△장동인 미래읽기컨설팅 대표=현재는 과거의 연속 속에서 만들어지고 유전된 것이다. 따라서 돌발변수라는 것도 `돌발적`인 상황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미래도 지금까지의 연장선에서 보면 보일 수 있다. `과거 10년간 우리는 많이 변했는가`를 생각해보면 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렇다면 앞으로 10년 후는 지금과 많이 다를까. 역시 `그렇지 않다`는게 내 답이다.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것들, 특히 LED, 반도체, 3D, 친환경, 그린, 스마트그리드, 스마트폰의 진화, 소셜 네트워크, 퓨전(Fusion) IT 등은 앞으로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다. 다만 미래예측에서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합해지는 세상에서 `대한민국`이 어떻게 해야 미래를 먼저 선점하고 이끌어 갈 수 있을까 하는 부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2020년 개인의 삶의 변화는 어떻게 나타날 것으로 보나.
△송인혁=2020년에는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부족의 시대가 열린다. 모바일 인터넷의 확산으로 소통 비용이 제로(0)로 떨어진다. 소비자가 느끼는 제조비용도 `0`에 수렴한다. 결국 창조 비용이 낮아진다. 이는 지금까지는 전문가, 미디어와 같은 거대 지식이 사회에 큰 영향력을 가졌고 사회를 주도했다면 앞으로는 소셜 서비스들을 통해 `또래(peer)들`끼리 뭉치고 지식을 생산하고 알리는 것이 가능해진다. 자신들의 관심사나 의견, 취미 등을 공유하는 일종의 `부족`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부족들은 온라인, 모바일, 소셜 등을 통해 힘을 가지게 되고, 이렇게 되면 협업의 의미는 더 중요해진다. 경쟁의 형태가 달라진다. 교육도 달라진다. 지식은 검색하면 그만이다. 앞으로 학교에서 지식을 가르치는 것은 의미 없다. 스스로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팀을 이뤄 일하는 법 등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원광연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원장=2020년의 모습을 전망하기 위해서는 1990년의 모습을 되돌아봐야 한다. 당시 DOS, 윈도우 출시, 286등이 주류를 이뤘고 이런 것들이 현재로 바뀐 만큼의 변화가 10년 뒤에 나타날 것이다. 현재를 90년대 생활상과 비교하면 여전히 95%는 유지되고 있다. 5% 가량이 변화한 것이지만, 그 5%에서 굉장히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기술적으로는 인터넷의 변화가 가장 컸다. 10년 뒤의 인터넷은 지금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교육하는 방법, 즐기는 방법, 메디컬 서비스 등이 차세대 인터넷으로 크게 변화할 것이고 국내 산업이 주도해야 할 영역이라고 판단한다.
◇이 같은 변화의 상황에서 국내 IT산업의 가능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나.
△원광연 서강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교수=국내 IT산업에 가장 필요한 것은 다양한 경험들을 축적하고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 저변 마련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국내에서 앱스토어와 같은 모델의 성공을 위해서는 UCC처럼 사용자가 직접 애플리케이션을 제작하는 UCA(User Creative Application) 환경이다. 개발자를 소유하는 개념이 아니라 시장을 만들어주고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 때 새로운 기회가 만들어지고, 국내 IT산업의 진일보가 가능하다. 기업이나 민간단체가 주축이 돼 일반 대중이 SW를 동영상 만들듯이 만들어 내는 시기가 조만간 열릴 것이다. 저작권 영역에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와 같은 개념을 SW에 적용해 활성화시키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김진화=빠르게 부각되고 있는 모바일 영역은 인프라 없이도 진입 가능한 시장이라 생각한다. 생각하고 움직일 시간이 부족한 역동적인 시장이라 민첩하고 손재주가 우수한 국내 민족적 특성과도 부합한다. 이런 시장일수록 예술적 중요성이 부각된다. 이런 점에서 한국과 중국이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예술적 자질이 부족하다는 생각이고, 인도는 철학이나 과학적 사실 부문에서는 장점을 가지고 있으나 감수성 부문에서는 별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모든 변화는 시도→경험→학습의 순으로 이뤄진다. 국내 사람들은 많은 시도를 하는 특성을 보이기 때문에 빠른 순환이 가능할 것이다. 시간은 다소 걸리더라도 많은 인재들이 출현할 것이고, 이들이 경쟁력의 중추로 활약할 것이다.
△석준형=아이폰에서 얻은 교훈으로 알 수 있듯이 제조업 중심, 하드웨어 중심에서 국내 산업의 취약점이 노출되고 있다. 소프트(Soft) 기술, 솔루션/콘텐츠 기술이 같이 발전 · 융합되어야 미래 IT의 리더십을 가질 수 있다. 동시에 10년 후 중국의 범용 IT기술, 제조 기술의 추격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 하지만 창의성과 소프트 기술이 함께 요구되는 변화의 시대에 대응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아이폰, 아이패드에 비해 우리가 늦었지만 빠른 속도로 따라잡을 수 있는 저력이 있다고 믿는다.
◇우리나라가 미래 경쟁력 확보에서 가장 주력해야 할 부문은 무엇인가.
△ 원광연=미국의 경우 인도를 통해 IT 및 SW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국내가 이를 따라할 순 없다. 국내가 IT 및 SW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마인드에 대한 교육이 교과에 포함돼야 한다. IT가 점점 UCA의 개념으로 간다면 어려서부터 수학, 물리뿐만 아니라 디지털에 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기존 교과과정으로는 새로운 컨셉의 접근이 제한적이다. 수학에서 무한대의 개념과 컴퓨터에서 무한대의 개념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UCA는 손쉬운 개발 툴과 장터를 만들고, 필요한 기능을 직접 조립하는 방식으로 가능하다. 이 경우 일반인들은 추상적 아이디어를 도식화하는 능력을 기르면 SW를 만들 수 있다. 창의성 교육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다만 디지털 문화와 기존 규범간 괴리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도출돼야 한다.
△장동인=국내 기업들은 왜 애플이 강한지, 왜 미국의 SW가 강한지 연구해야 한다. 단순히 실력이 있는 사람을 데려다 놓고 개발시킨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국내 대기업들이 할 일은 SW 생태계를 열어 놓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 대기업들이 만드는 하드웨어 스펙, 인터페이스 등을 공개해야 한다. 전 세계 개발자들이 스스로 삼성전자, LG전자가 만드는 SW 비즈니스 세계를 좋아하도록 해야 한다.
△김홍선=SW와 콘텐츠의 구분이 없어지면서, 이들의 에코 시스템 형성에 많은 관심을 가져애 한다. 이러한 에코 시스템은 수평적 거래를 지원하면서, 비즈니스 모델로서 해외 대상 서비스 등의 요건이 필요하다. 국내 산업 구조는 대기업 편중이 매우 심한 상황에서 새로운 에코시스템은 절실하다. 단적으로 단말기는 삼성이 애플보다 더 잘 만들 것이지만, 애플에게는 에코 시스템이란 강력한 우군이 있다. 국내를 겨냥한 에코 시스템은 무의미하고 당초부터 해외를 겨냥한 에코 시스템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IT벤더, 기술자보다는 비전문가들이 나서서 변혁을 이끌어야 할 것이다.
△김진화=IT 미래상을 단적으로 표현하면 예술적인 사회 구현이라 할 수 있다. 국내에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 역시 예술이다. 이런 부문에서 중국의 저력이 대단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중국은 고대 문명 발생국일 뿐만 아니라 나침반 등 근대 문화를 바꾼 발명품 등을 개발한 나라로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 나라 예술에서 IT 미래 잠재력을 가늠해볼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사고 경직성으로 인해 국내보다 예술적 잠재력은 다소 낮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