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 핵심 설비인 중이온 가속기 설계 작업에 들어간다.
교과부 고위관계자는 "과학벨트 법안 통과는 안 됐지만 중이온 가속기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100억원 예산을 기재부에서 확보했다"고 15일 밝혔다. 과학벨트 법안이 국회의원 간 논란 때문에 통과되지 못하고 지지부진해 사업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졌으나 그나마 사업이 지속될 수 있는 숨통이 트인 셈이다.
중이온 가속기는 현재 개념설계(원하는 실험목적을 설정하고 어떤 기계가 필요한지 등 검토)가 진행되고 있으며 올 11월 마무리된다. 내년부터 본설계가 시작되면 1년6개월 뒤 프로토타입을 제작하고 2012년 본제작에 들어간다.
한국형 중이온 가속기 설계는 벌써부터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 과학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2016년 완공될 중이온 가속기를 이용하면 전 세계 과학자들이 한 번도 시도해 보지 못한 흥미로운 실험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국형 중이온 가속기는 선형가속기와 원형가속기가 복합된 형태로 지어질 예정으로 세계에서 처음 시도하는 창의적인 디자인이 적용된다.
가속기 설계를 주도하고 있는 홍승우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는 "한국형 중이온 가속기로 만들어낼 수 있는 희귀 동위원소의 종류나 양이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에 그동안 선진국도 해보지 못한 실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자연에 존재하는 원소(수소, 헬륨, 리튬 등)의 수는 100개 정도다. 최근까지 과학자들이 찾아낸 동위원소 수는 3000개 정도이고, 앞으로도 3000개 이상의 동위원소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희귀 동위원소를 이용하면 다양한 과학 발전, 기술 개발을 기대할 수 있다.
중이온 가속기는 길이 400m짜리 선형가속기와 지름 약 10m짜리 원형가속기(Cyclotron)로 구성될 예정이다. 부대 장비들을 포함하면 전체 길이는 1㎞에 달한다. 가속기가 들어설 곳은 100만㎡ 터가 필요하다.
홍 교수는 "세계 최대 가속기를 보유한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가 5㎾ 정도의 전력파워를 갖고 있지만 우리는 400㎾의 세계 최고 파워를 내면서 세계 최고 에너지를 갖는 희귀 동위원소 빔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파워가 세야 희귀 동위원소가 많이 나온다. 한국형 중이온 가속기는 외국에 비해 작은 투자 규모(4700억원)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과학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새로운 모델로 설계되는 셈이다.
가속기는 입자나 이온을 빛의 속도에 가깝게 빨리 움직이게 만드는 장치를 말한다. 20세기 들어 지금까지 노벨물리학상 중 약 20%는 가속기와 관련이 있을 만큼 중요하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입자나 이온은 에너지가 높아 물체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갈 수 있어 미시세계를 엿볼 수 있다. 이런 성질을 이용해 중이온 가속기는 희귀 동위원소를 발생시켜 원소의 기원을 연구하며 신소재나 바이오 물질을 연구할 수 있다.
중이온 가속기를 이용하면 나노보다 더 작은 미세구조물을 가공할 수 있기 때문에 차세대 반도체 공정과 집적회로를 제작할 수 있으며 새로운 원자로 개발도 가능하다.
특히 그동안 관찰하지 못했던 새로운 원소를 찾아낼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원소를 정리해놓은 주기율표에 우리가 발견한 원소 이름을 당당히 올릴 수 있다. 예컨대 중이온 가속기로 새 원소를 발견하면 코리아늄 등의 이름을 지을 수 있다. 홍 교수는 "새 원소에 지역 이름을 붙이면 그 지역은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고 명소로 자리잡게 된다"고 말했다.
한편 중이온 가속기를 이용하면 암도 치료할 수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실제 일본과 독일에서 지금까지 3000명 정도 암환자를 중이온 가속기로 치료했다. 수술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입원이나 회복 기간도 필요 없다.
[매일경제 심시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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