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다시 뭉칫돈이 빠져나갔다.
코스피가 1818.86으로 장을 마감하며 2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지난 13일,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는 무려 5342억원이 빠져나갔다. 지난 7월 15일(6555억원)에 이어 가장 큰 금액이 유출된 것이다.
지수가 1800을 넘어서는 순간 그동안 환매를 미뤄왔던 고객들의 환매욕구가 강해질 것이란 건 예상했던 일이다. 코스피 1600, 1700 등 마디지수대에서 겪어왔던 현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대량 환매가 현실로 다가오자 주식시장은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지난 13일과 14일 이틀간 투신은 유가증권시장에서만 7518억원어치의 주식을 팔아치웠다. 삼성SDI 주식을 1127억원어치 순매도한 것을 비롯해 삼성전자(728억원), 삼성전기(435억원), 하이닉스(337억원) 등을 대량으로 매도했다. 외국인이 물량을 받아줬기에 망정이지 자칫 유가증권시장 대형주들의 주가가 크게 출렁일 뻔했던 상황이다.
송이진 하이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고객으로부터 환매 요구가 한꺼번에 몰려들면 투신 입장에서는 보유 중이던 주식을 팔아 현금화할 수밖에 없다"며 "13일 대량 환매의 여파가 14일과 15일 증시에 전해졌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주식시장의 움직임이 불안해지면 그 결과는 펀드시장으로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 증시가 상승할 것이란 기대가 있다면 환매를 미루겠지만 증시가 불안할 경우에는 `일단 환매하고 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다만 국내 주식형 펀드 수익률이 어느 정도 회복되면서 환매 이유가 예전과 달라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자산운용 관계자들에 따르면 코스피 1500~1600대에서 빠져나간 투자자들이 손실을 감수하거나 본전 수준에서 환매를 단행한 경우라면 최근 환매 이유는 `수익 확정`이다. 코스피 1800은 2007년 말 고점에서 거치식 투자를 단행한 일부 투자자를 제외한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되돌려줄 수 있는 지수대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의 한 프라이빗뱅커(PB)는 "1700 이하에서 환매한 투자자들은 `손실을 봤다`며 화를 내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 펀드 환매 고객 가운데는 `은행 예금보다는 높은 수익을 올렸다`고 기뻐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최근 주식형 펀드 환매를 단순한 `추석 효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주식형 펀드가 적립식 소액 투자자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명절 이전 현금 수요가 맞물리며 펀드 환매가 가속화했다는 말이다.
한편 펀드 환매 이후 자금 흐름에서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펀드 자금 유출이 가팔랐던 9월 이후 예탁금은 13조원 수준에서 발이 묶여 있다. `펀드 환매 증가=예탁금 증가`라는 공식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직접 투자는 부담스럽고 은행 금리는 성에 차지 않는 투자자들이 선택한 대표적인 상품이 증권사 랩어카운트(종합자산관리계좌)다. 1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랩어카운트 잔액은 6월 말 28조5159억원에서 7월 말 29조6990억원으로 한 달 사이 4.1%(1조1831억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기관 가입 비중이 큰 채권형, 종합자산관리계좌(CMA)
형 상품을 뺀 주식형, 맞춤형, 자문형 랩 등의 증가율은 10.8%(1조856억원)에 달했다. 개인이 많이 찾는 랩이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는 얘기다. 업계에서는 지난달 기준 랩어카운트 잔액이 무난히 30조원을 돌파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3개월간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6조6000억원이 유출되는 동안 채권형 펀드로는 거꾸로 5000억원어치가 유입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매일경제 김동은 기자/김정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