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사정관제 공정성 문제가 도마에 오른 가운데 일부 대학이 정보기술(IT) 시스템으로 입학사정 과정 비리 차단에 나서 주목받고 있다. 입학사정시스템에는 자기소개서 모사 방지, 외부인 정보 열람 차단 등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일 수 있는 솔루션이 대거 채택됐다. 초기 도입 대학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면 다른 대학의 벤치마킹도 잇따를 전망이다.
19일 대학가에 따르면 한국외대, 서울시립대, KAIST 등 주요 대학이 입학사정관 시스템을 구축했거나 검토 중이다.
한국외대는 지난 8일 입학사정관 관리시스템을 정식 오픈, 2011학년 전형부터 이를 활용해 학생을 뽑을 예정이다.
이 시스템은 재학생들을 관리하는 학사관리시스템과 분리 구축해 입학사정관을 제외하고는 총장을 포함한 대학 관계자들의 접속이 원천 차단되는 것이 특징이다. 외부인이 자기소개서, 수학계획서, 봉사활동 내용, 방문일지, 경력 등 평가자료를 조작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입학사정관이 고교생들의 인성 · 자질을 상담한 기록도 세세하게 남겨 면접 점수를 조작하는 것을 사후 검증할 수 있도록 했다.
KAIST는 올해부터 입학사정관 시험 추천서를 종이 대신 온라인으로 접수해 기록 위 · 변조를 막고 있다. 이 시스템은 한 학생을 두고 세 명의 다른 사정관들이 준 점수가 각각 다를 경우 시스템이 해당 사정관에게 경고 메시지를 전달한다. 상대적으로 너무 높거나 낮은 점수를 주는 경우가 발생하면 사정관들이 재논의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시립대는 내년 2월까지 입학사정관 시스템을 구축한다. 서울시립대 관계자는 “입학사정관이 방대한 업무를 실수 없이 처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다른 대학 사례를 참고해 개발 계획을 수립 중”이라며 “면담기록, 자기소개서 등 학생들의 DB를 근거로 한 평가점수까지 시스템 내에서 산출될 수 있게 해 입학사정관의 주관이 개입할 여지를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입학사정관제가 확대되면서 공동 대응도 본격화될 조짐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주요 대학으로부터 일부 예산을 받아 자기소개서를 베끼거나 대필하는 시도를 막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 대학가에 무료 배포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대학 내에서는 IT가 입학사정관제의 공정성을 높일 수 있는 기본 인프라인 만큼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한다. 한 대학 관계자는 “입학사정관시스템은 자산에 해당하기 때문에 국고보조금 지원을 받기 어렵다”며 “교육부에서 배당되는 관련 예산은 적게는 2억~3억원, 많게는 5억~10억원에 불과해 별도의 시스템 구축 계획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윤달수 KAIST 입학사정관실장은 “입학사정관제를 앞서 도입한 미국도 제도 정착까지 8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전제한 뒤 “이 제도로 입학한 학생이 4년 동안 어떤 성과를 내는지까지 IT로 관리하는 등 대학가 전반의 IT 거버넌스를 개편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욱 기자 coolj@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