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日수출 부품·소재중기 엔高에 콧노래

완구업체 오로라월드는 8~9월 일본 수출 물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0% 이상 늘었다. 멸종 동물들을 봉제완구로 만든 `유후와 친구들` 시리즈가 일본 진출 4년째를 맞아 인지도가 크게 높아진 데다 최근 엔화 급등으로 가격경쟁력까지 더해지면서 시너지 효과를 냈다. 김용연 오로라월드 경영기획팀장은 "지난해부터 일본 수출이 늘어나는 추세였는데 최근 엔화 가치가 오르면서 수출이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문구업체 모나미도 최근의 엔화 급등이 반갑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수출 실적의 70%를 상반기에 이미 달성했다. 기존 제품 대비 3배 이상 수명을 늘린 마커펜이 인기를 끌고 있다.

모나미 관계자는 "올해 일본 수출 목표를 지난해보다 20% 이상 늘어난 360만달러(약 42억원)로 잡았는데, 요즘 추세대로라면 목표 달성이 무난할 전망"이라며 "엔고로 인한 가격경쟁력 확보가 대일 수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일 수출 업체들이 엔화 강세로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전례 없는 엔화 강세가 국내 수출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을 높여주면서 대일 수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 이들 업체들은 수출 물량 증가뿐 아니라 환차익까지 얻는 등 엔고 수혜를 이중으로 누리고 있다.

엔고 수혜를 누리는 품목은 자동차 부품, 문구, 완구, 섬유류, 화학제품 등 다양하다. 특히 부품ㆍ소재 분야에서 엔고 영향으로 대일 수출이 늘어나고 있다.

연성회로기판을 생산하는 플렉스컴은 이달에만 8억원 남짓 물량을 일본으로 수출했다. 이 회사가 생산하는 연성회로기판은 자유자재로 구부릴 수 있는 회로기판으로 휴대폰이나 LCD 전자제품에 필수적으로 투입된다. 플렉스컴이 일본 수출에 나선 건 지난해 말부터. 일본 내 휴대폰ㆍ컴퓨터 제조사나 LCD 제품 생산업체에 직수출하고 있다.

이 회사 하경태 대표는 "월매출이 130억~160억원 사이를 오가는데, 이 중 일본 수출분이 8억원을 넘는다"며 "기대 이상의 성과"라고 말했다.

하 대표는 "엔고 현상이 심화되면서 인건비나 기타 제조경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일본 업체들이 차라리 한국에서 부품을 사오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며 "심지어는 베트남 현지에 진출한 일본 기업도 제품 견적을 의뢰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휴대폰용 카메라 모듈을 생산하는 한성엘컴텍은 최근 일본 휴대폰 제조사와 중단됐던 납품 협상을 재개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엔고로 일본 업체들이 부품조달 전략을 바꾸는 분위기가 확실히 감지된다"고 말했다. 공작기계 부품 제조업체인 삼와테크도 엔고 영향으로 최근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으로부터 주문량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생활용품업체도 엔고 덕을 보고 있다. 비데 제조업체 엔씨엠은 최근 일본 내 건설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대일 수출이 크게 늘었다. 이 회사 장동수 부장은 "일본 경기가 디플레이션 경향을 보이면서 비데 사업자들이 공급가 인하를 요구하고 있는데, 엔고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한 덕분에 공급가 인하 요구에 대응 여력이 생겼다"며 "올해 1000만달러 이상을 수출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관련 단체와 연구기관들은 엔고 현상이 대일 수출 증가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74개사 수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해 19일 발표한 `엔고 현상에 따른 수출중소기업 애로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출중소기업의 36.6%가 엔고 현상으로 수출이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 전망을 긍정적으로 예상한 업체들은 기계부품, 전기전자, 섬유 업종에서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삼성경제연구소도 지난 14일 `엔고의 배경과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엔ㆍ달러 환율 변화율이 1%포인트 하락하면 한국 전체 수출 변화율은 0.5%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됐다"면서 "업종별로는 자동차, 정보통신, 가전 등이 더욱 민감하게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일본 내수 경기가 워낙 좋지 않아 엔고로 인한 대일 수출 증가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카메라 모듈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 생산업체인 동운아나텍의 김동철 대표는 "엔고로 일본 쪽 수출이 늘긴 하겠지만 아직은 드러내놓고 자랑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며 "일본 경기가 크게 침체된 만큼 활발한 수출 거래를 쉽게 예상할 순 없다"고 말했다.

대일 수출 효자 종목인 금형업의 경우 대일 수출은 엔고 현상에도 불구하고 최근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한국금형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금형의 중국 수출은 1억9165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 이상 늘었지만 일본 수출은 2% 감소한 1억3729만달러에 머물렀다.

[매일경제 노현 기자/서진우 기자/이상덕 기자/강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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