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북구 복현오거리에 위치한 삼성 디지털프라자 경대점.
앳된 얼굴의 남녀 대학생 무리가 이제 막 문을 연 가전매장을 찾았다. 이들은 영진전문대학 디지털경영 계열 소속 소매유통반 학생들. 오늘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야외수업이다.
학생들을 반갑게 맞이한 이는 삼성전자 경북지사 지점장. 지점장은 매장 내 전자제품 배열과 동선관리, 상품관리, 상품구색, 제품소개 등 유통현장에서 일어나는 생생한 내용을 사례를 들어가면 설명하다. 수업을 마칠 시간. 학생들은 점포 직원들이 갖는 조회도 참관해 전일 실적과 당일 영업관리에 대한 상황도 체험한다.
현장강의가 끝난 학생들은 다음날 대학 강의실에서 이론수업을 받는다. 삼성전자에서 파견된 강사로부터 소매 유통구조 및 운영에 대한 교육이 이뤄진다.
삼성전자가 가전 유통의 선진화를 이끌고 있다. 국내 최초로 대학교에서 유통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것은 물론이고 디지털프라자 등 삼성 제품을 판매하는 유통주의 자녀를 대상으로 한 소위 `가업승계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과거 구멍가게 수준에 머물렀던 전자제품 판매 시스템을 한층 업그레이드하면서 소매유통도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을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 한국총괄의 유통 선진화 노력은 일자리 창출은 물론이고 본사와 대리점 간의 상생경영의 새로운 모델로 거듭나고 있다.
◇달인에게 배운다=삼성전자 한국총괄이 지방대학 최초로 영진전문대와 개설한 유통전문 인력 양성 프로그램은 이미 인기과목이 된 지 오래다. 소매유통반 학과 프로그램이 개설된 지 1년이 채 안 됐지만, 입소문을 타고 지원자가 몰린다. 졸업 후 전공을 살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적성에 맞는다면 리빙프라자 또는 백화점, 할인점 등에 입점한 삼성 매장에서 전자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소매유통반은 2009년 말 디지털경영계열 1학년 재학생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학점과 면접을 거쳐 48명을 선발했다. 3월 개학과 함께 삼성전자에서 요구한 교과목을 100% 반영한 `전자유통실무실습` 등 총 18학점의 관련 교과목으로 교육이 이뤄졌다.
학생들은 이론과 실무를 동시에 익힐 수 있는 커리큘럼으로 운영되는 교육을 통해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준비된 신입사원이 됐다. 여름방학 중에는 2개월 간 현장에서 소정의 급여를 받으면서 유통에 관한 실무를 익혔다. 이들은 특히 삼성과 관련된 유통관련 회사 취업 시 2년의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삼성이 영진전문대와 개설한 유통반이 일자리 창출과 전문인력 육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하는 있는 것이다.
◇전자제품 유통, 100년 가업으로=삼성전자는 지난 2007년부터 대리점 경영주의 자녀를 대상으로 한 교육과정도 신설 · 운영 중이다. 이 프로그램은 전자제품 유통을 가업으로 계승할 수 있는 미래의 유통전문가를 육성하는 데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삼성전자 한국총괄이 대리점과의 상생협력 강화 및 경영주의 2세대를 위해 개설 중인 `차세대 유통 경영자` 양성 과정은 최근 3기 수료식을 진행했으며 서울대와 협력 체제를 구축해 교육 수준도 한층 높아졌다는 평가다. 이 프로그램에는 디지털프라자 경영주뿐 아니라 B2B전문점인 시스템에어컨 전문점 2세 경영주들까지 참여한다.
1기 21명에 이어 지난해 16명이 수료했고 올해 3기에도 12명 등 총 49명 차세대 유통 경영인을 배출했다. 수료자 49명 중 3명은 신규로 점포를 출점시켜 독립경영에 나섰다. 13명은 부모로부터 유통점 경영을 물려받아 실질적인 경영에 들어갔다. 전자제품 유통을 가업으로 잇고자 하는 미래의 유통전문가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2008년 11월 디지털프라자 남양점을 출점한 김보중씨는 그 중 한명이다. 그는 차세대 유통경영자 과정에서 배운 이론과 아버지 밑에서 배운 노하우를 살려 신세대 경영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기 수료자인 정영화씨는 “삼성전자 차세대 경영자 양성과정 수료 전에는 매장에 물건만 놓으면 팔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매장에서 어떻게 진열해야 판매를 할 수 있는 지 시즌별 어떤 판촉을 진행할 지에 대해 고민한다”고 교육 이수 후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소개했다.
2기 수료자인 김지영씨는 “단순히 부친의 일을 떠맡는다는 생각에 안일하게 생활해 왔다”면서 “교육을 받고 나니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는 유통점 경영자에 대한 인식이 과거 점포주인의 이미지에서 다수의 직원을 거느린 전문경영인으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1세대 경영주들은 전자제품 유통을 `내 자식에게도 물려주고 싶은 견실기업`으로 생각하는 기회를 얻고 있다. 교육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디지털프라자에 대한 비전과 강한 자긍심을 고취해 가고 있다. 미래의 디지털프라자 사장님, 10년 후 예비 CEO들이 이 과정을 통해 육성되고 있는 것이다.
유통 경영자 과정은 서울대 경영대에서 인사 노무에서 재무 · 회계 · 마케팅까지 주요 경영이론을 교육하며 이론 교육과 함께 실제 영업을 위한 현장 실무 교육까지 진행 중이다.
김기영 삼성전자 차장은 “신세대 경영자의 특성을 감안해 커뮤니케이션 훈련 및 CEO로서의 경영능력 향상을 키우는 데 주안점을 두고 프로그램이 진행된다”고 소개했다.
최근에는 현장 실습과 선진사례 습득을 위한 일본 소매 유통 벤치마킹 등의 프로그램이 추가됐다. 이 결과 삼성전자는 `밀어내기` 방식 도매영업 위주 대리점을 소매영업 중심 매장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김재인 부장은 “차세대 유통 경영자 양성 과정은 제조와 유통업체 사이의 신뢰 문화 형성을 위한 일환”이라며 “교육 인원을 확대하고 유통 인력 재교육에도 나서는 등 국내 유통 인력 수준을 한 단계 개선하는 데도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한국총괄에서 줄기차게 추진해 온 고객만족 경영이 차세대 경영의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과거 밀어내기식 도매영업을 탈피하고, 실판매 소매영업을 활성화함에 따라 대리점의 수익성이 눈에 띄게 개선됐다. 곳간에서 인심 나듯이, 대리점의 이익률이 높아지면서 삼성전자와 대리점 간에도 신뢰가 쌓이고 있다. 유통 현장에서도 `상생의 바람`이 불고 있는 셈이다.
국내외 유수의 대학에서 경영학 관련 수업을 받은 대리점 자녀들의 눈에도, 전자제품 유통은 한 번 해볼 만한 사업으로 다가섰다. 특히 본사와 상호 윈윈하면서 동반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갖게 됐다.
실제로 수도권에서 삼성 제품을 판매하는 유통전문점 사장의 장남인 도중훈씨는 수도승의 길을 걷다가 유통경영자 과정을 통해 인생의 행로를 바꾸기도 했다. 그는 창업 30년을 넘긴 가업을 이어받아 유통 선진화를 이끌고 있는 중이다.
김원석기자 stone201@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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