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승의 철도 르네상스]한반도와 유라시아대륙 소통의 길

미래사회가 선택한 교통혁명 `철도`는 한반도와 유라시아대륙이 소통하는 길이다.

8년 전 크리스마스, `시베리아철도(TSR) 전철화 기념식`에 참석한 적이 있다. 19세기 말 러시아 알렉산드르 3세에 의해 착공된 시베리아철도건설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위대한 도전이었다. 모스크바를 출발하여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면 시베리아철도 총 연장 9288㎞가 새겨진 기념탑이 있다. 지구둘레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거리이다. 전철화 기념식으로 가는 길, 영하 30도의 혹한에도 열차 내부는 매우 따뜻했다. 열차마다 석탄보일러가 24시간 가동되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 흔들리는 열차 안에서 몸을 뒤척이다, 창밖의 눈 덮인 시베리아가 내 눈으로 들어왔다. 끝없이 펼쳐지는 시베리아의 설원은 광활하지만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 조금씩 밝아오는 푸른 새벽, 떠오르는 붉은 태양은 동해의 일출만큼이나 감동적이다. 아니 눈이 녹아버릴 듯 가슴이 끓어오른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애환이 새겨져 있는 바로 그 땅이어서일까.

역사적으로 과거의 철도는 열강의 팽창주의와 냉전 이데올로기의 상징이었다. 산업혁명시기의 철도는 패권국가에 정치 · 경제적으로 풍요를 주었지만, 식민국가에는 착취와 수탈의 고통을 안겨주었다. 일제는 한반도에 철도를 부설하고, 대륙 진출을 위한 병참기지로 활용했다. 그만큼 우리의 민족경제는 피폐해져 갔으며, 질곡의 삶이 반복되었다. 호구지책으로 일부는 연해주로 이주하여 고단한 삶을 이어간다. 하지만 이도 잠시, 스탈린의 소수민족 분산정책으로 18만명의 고려인이 시베리아철도에 실려 동토의 땅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다. 해방 후 남북은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 하에 분단되고, 민족의 혈맥은 끊어져 버린다.

하지만 미래의 철도는 어떤 모습일까. 젖과 꿀이 흐르는 신천지라고 얘기하고 싶다. 21세기 미래의 한국철도는 다양한 변화와 개혁을 요구받고 있다. 특히 남북 간 철길이 열리는 것은 대립과 분단의 역사를 접고 화합과 통일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요, 새로운 한반도시대를 여는 것이다. 남북철도는 단절됐던 동북아 공간을 복원하는 길이며, 한반도가 유라시아대륙과 소통하는 미래의 길이다.

최근 남북 관계는 이번 무더위만큼이나 견디기 힘들다. 이럴 때 고속철도를 타고 시베리아로 달려가는 시원한 바캉스를 꿈꿔본다. 미래는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태평양까지 연결해주는 유라시아고속철도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교통 · 에너지 · 운하 · 정보통신, 기타 기초 인프라가 일정한 공간에 집적돼 단일한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이것이 `21세기 철의 新실크로드`인 것이다. 특히 한국은 지리적으로 태평양에서 유럽까지 대륙교의 관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 철의 新실크로드 건설은 그동안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 등에서 강세를 보여 온 한국이 유라시아 관련 국가와 상호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윈윈할 수 있는 국제협력 사업이다. 이는 폐쇄적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넘어선 상호 협력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지역 통합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에 한국은 선제적이면서 능동적으로 `21세기 철의 新실크로드`의 로드맵을 준비해야할 시점이다. 110여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철도는 ‘21세기 국제고속철도’‘남북경제공동체’‘동북아일일생활권’ ‘유라시아 시대’라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철길은 바로 그 미래로 가는 길이다.

요즘 CEO들의 경영화두로 혼 · 창 · 통이 많이 거론된다. 성공하고 싶다면, 비전을 세우고, 끊임없이 창조하고, 소통하라는 의미다. 철마도 외쳐본다. 남북통일의 혼이 되어 철의 新실크로드를 창하고 남북 간 통하리라.

나희승 한국철도기술연구원 기획부장 hsna@kr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