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9월 29일. 당시 문화공보부는 월간지 `사상계(思想界)`의 등록취소를 통보했다. 1953년 처음 발간된 이후 대한민국 지식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잡지가 공식 폐간된 것이다.
그때 문화부에서 밝힌 공식적인 등록취소 이유는 인쇄시설을 갖추지 못한 사상계가 인쇄소 책임자를 인쇄인으로 올려야 하는 규정을 어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였을 뿐 1970년 5월 발간된 205호에 젊은 시인 김지하가 쓴 담시 `오적(五賊)`이 당시 정권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다. 오적은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군장성, 장차관 등 당시 지배 계층을 도둑(賊)으로 표현하고, 이들의 부정부패를 적나라한 묘사와 짐승이름을 뜻하는 `벽(僻)`자를 동원해 걸쭉하게 풍자, 비판한 시다.
언론을 통제함으로써 집권력을 강화해 온 이들에게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이 시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막고 싶은 불편한 진실이었다.
재판부는 이 시가 북한을 자극할 것이라는 말을 했지만, 보수적인 지식인들조차 세태에 대한 풍자로 `표현의 자유` 영역으로 받아들였다. 시가 발표된 직후에는 서점에서 해당호를 수거하고, 시판하지 않는 것으로 일단락되는 것 같았으나이 시가 신민당의 기간지 `민주전선`에 재수록되면서 문제가 확산됐다.
결국 시를 쓴 김지하와 사상계 발행인 부완혁, 편집장 김승균이 6월 2일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고, 사상계는 결국 휴간 끝에 폐간됐다. 이렇게 오적 필화사건은 진행됐다. 40년 전 까마득한 일이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는 한 장의 사진이 화제가 됐다. 대한민국 경제에 대한 예측으로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하더니 수감생활까지 치렀던 미네르바, 박대성씨의 달라진 모습이었다. 출소 후 스트레스로 살이 40kg이나 빠진 모습 자체도 화제였지만 1년 전 미네르바가 구속될 당시 정부의 과도한 인터넷 규제로 인해 표현이 자유가 억압됐다는 비판도 다시 떠오르게됐다.
그때 미네르바의 구속을 두고 인터넷의 많은 논객들이 오적 필화사건에 빗대었다.
미네르바의 이야기가 오적 필화사건과 동시에 거론됐던 것은 잡지까지 폐간시켜가며 기득권을 지키려던 당시 정부의 모습과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떠나니는 정부에 비판을 거세하려하는 현 정부와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필화와 같은 사건이 거듭되면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람들의 각성은 커졌고, 수많은 비판과 노력의 결과, 상당히 많은 부분 표현의 자유를 확보했다. 하지만 예술작품이건 인터넷에 달리는 댓글이건 정부가 통제할 수 있다는 정권을 가진 자들의 생각은 달라지지 않는 것은 슬프다.
이수운기자 per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