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둘러싼 주변 4강대국 간 정치ㆍ경제적 갈등이 심해지면서 우리나라가 고래 싸움에 낀 새우 형국이 되고 있다.
첨단기술을 가진 일본과 가격 경쟁력을 보유한 중국 사이에서 빚어진 경제위기 상황을 빗대어 표현했던 `넛크래커론`(넛크래커=호두 까는 기구)이 다시 부상할 조짐이다.
통화 무역 영토 외교 등 여러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 양상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 대결의 결론이 어떻게 날지 알 수 없다. 그 불똥이 어디로, 어떻게 튈지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과거 넛크래커 상황과 달리 한국이 독자적인 대응에 나서기 어렵다.
실제 위안화 환율로 촉발된 미ㆍ중 갈등이 보복관세 부과로 이어지면서 이들 나라와 교역이 많은 한국은 불안한 처지에 놓여 있다. 양국 간 갈등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 분위기가 고조되면 경제에서 수출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처지에서는 여건이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지난 27일(현지시간) 미 상무부는 중국산 동파이프에 대해 최고 61%의 반덤핑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중국 상무부가 미국산 닭고기에 대해 반덤핑관세(105.4%)를 물린 지 하루 만이다. 양국 간 무역 분쟁 여파는 두 나라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홍식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양국 간 무역 분쟁이 심해지면 기술 규제 등과 같은 비관세 장벽도 높아져 한국 기업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염려했다.
자국의 화폐가치를 낮추려는 통화전쟁의 포화도 한국을 비켜가기 어려울 전망이다. 미ㆍ중 통화 분쟁의 근본 원인은 미국의 교역 불균형 해소 노력이다. 대미 교역 흑자를 보고 있는 한국도 언제든지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는 셈이다.
미국이 중국 이외에 다른 나라로 통화 압박 대상을 넓히는 시점이 언제가 될지 불확실하지만 적어도 11월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가 고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정부는 공식적으로 G20 회의에서 특정 국가의 환율 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IMF, 브라질 등은 최근 들어 G20에서 환율 이슈를 다뤄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는 28일(현지시간) 기자간담회에서 "환율전쟁이 발발할 위험성이 없다"며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환율 문제가 다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G20 서울회의 최대 이슈로 환율 문제가 떠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미국이 한국에 대해 원화 절상을 대놓고 요구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2004년 이후 처음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한 일본 사례가 한국 입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외환시장 자유화 정도가 상대적으로 큰 한국은 강대국으로 분류되는 중국, 일본과 달리 미국이나 유럽의 요구를 거스르는 데 따른 정치적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원화에 대한 유럽의 견제도 만만치 않다. 유럽에서는 내년 7월 한국ㆍEU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앞두고 엔화보다 원화가치 절하가 더 문제라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국제결제은행(BIS) 자료를 인용해 "지난 5년 동안 엔화는 달러당 실질실효환율 평균치보다 13% 높게 거래된 반면 원화는 13% 낮게 거래됐다"며 "한국 정부가 수출을 위해 잦은 시장 개입을 해왔다"고 비판했다.
[워싱턴=매일경제 장광익 특파원/서울=매일경제 정혁훈 기자/김병호 기자/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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