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KIKO) 피해를 둘러싼 책임 논쟁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유사 환헤지 파생상품에 가입해 피해를 입은 인도 수출기업들이 현지 은행과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있어 비슷한 상황에 놓인 한국에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매일경제신문이 법무법인 대륙아주를 통해 입수한 `인도 오리사주 고등법원 판결문`과 `인도 중앙수사국 보고서(CBI)`에 따르면 인도 수출기업들은 통화옵션상품(탄ㆍTARN)으로 발생한 손실을 현지 최대 민간은행인 ICICI은행을 비롯한 22개 은행들과 합의를 통해 조정하고 있다.
특히 의류 위탁가공 업체 나하르(Nahar Industrial Enterprises)는 액시스은행(Axis Bank)과 은행 측이 손실액 70%를 부담한다는 내용에 대해 합의했고, 자동차 부품업체 순다람브레이크(Sundaram Brake Linings)는 예스은행(Yes Bank)과 4대6 비율로 합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합의를 통해 양측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은 현지 법원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데 따른 것이다.
인도 경제지 비즈니스 스탠더드는 현지 기업인 말을 인용해 "지난해 말 오리사주 고등법원이 중앙수사국에 불완전 판매, 외환 관리법 위반, 형사상 공모와 사기에 대한 포괄적인 조사를 요구했다"며 "이를 통해 법원에 제출된 많은 보고서들에서 은행 측 위반 사항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또 신문은 "앞으로 더 많은 은행이 합의를 추진하리라는 것은 전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며 "특히 언론에서 큰 관심을 보였던 사항들은 이미 합의를 했다"고 지적했다.
인도 기업들이 가입한 탄이라는 상품은 키코처럼 1~3년짜리 복합통화옵션 상품으로 루피ㆍ달러 환율이 하락하면 수출기업들이 이득을 얻고 반대로 환율이 상승하면 손해를 보는 구조다.
특히 일부 기업은 엔화 등과 연동한 상품에 가입했다가 큰 손실을 입기도 했다.
김성묵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는 "인도에서 문제가 된 외환파생상품은 키코와 동일한 복합통화옵션 구조로 계약상 수출기업 이익은 제한된 반면 환율 상승 시에는 수출기업이 무제한 책임을 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앞서 인도 현지 은행들은 2007년 말부터 인도 타밀나두주에 있는 현지 기업을 대상으로 이 같은 통화옵션상품을 집중 판매한 바 있다. 대륙 동남쪽에 있는 타밀나두주는 삼성 현대차 르노닛산 노키아 등 글로벌 기업들이 밀집해 있어 인도 정부가 선정한 `5대 매력적인 투자처`로 꼽히는 지역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현지 기업들은 2008년 초 루피화 값이 하락하면서 대규모 손실을 입었고 이에 타밀나두주 티루푸르시 35개 수출기업을 중심으로 파생상품 피해 수출 기업 모임인 `외환파생상품소비자포럼`을 결성해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들 기업은 "총 손실 규모가 2008년 말 기준 4조7030억4000만루피(약 11조8751억원)에 달한다"고 주장했고, 인도준비은행은 "은행이 회수하지 못한 금액은 75억5450만루피(약 1907억원)로 국가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줄 규모는 아니다"고 반박하며 양측이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특히 기업들은 법원에서 "이번 파생상품 계약은 1872년부터 이어진 인도계약법 제30조 도박에 따른 계약 무효에 해당한다"며 "우리는 이번 계약이 구속력이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현지 언론은 "수출업체들도 계약서에 사인을 한 책임에 대해서는 부인을 하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그들이 입은 손실이 얻은 이득에 비해 지나치게 불공평한 것이 문제점"이라고 말했다.
[매일경제 노현 기자/이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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