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
천재이자 괴짜였던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남긴 명언이다. 일본에는 아인슈타인의 이 한 마디를 학생들이 가장 많이 지나다니는 곳에 걸어놓고 금과옥조처럼 받드는 학교가 한 곳 있다. 요코하마 과학선도지구의 연구소들 사이에 자리잡은 요코하마 사이언스프런티어 고등학교다.
이 학교에 다니는 2학년 한 학생의 시간표의 일부는 이렇다. 등교 후 `아르곤 가스 내 단일 레이어 탄소나노튜브 확대 실험`을 한 뒤 `마이크로 라만 분광법`으로 결과를 평가한다. 휴식 후에는 생물실에서 `효소연쇄반응(PCR)` 실험을 끝낸다. 일과시간 후에도 할 일이 있다. 옥상 천체관측대로 가 토성의 고리를 관찰한다.
이학과와 수학과로 구성돼 한 학년이 6개반, 240명으로 이뤄진 요코하마 사이언스프런티어 고등학교는 2008년 12월에 설립돼 아직 졸업생도 배출하지 않은 신생학교다. 하지만 일본 어느 고등학교보다 과학 교육의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미생물 배양 실험을 위한 클린벤치를 수십대 갖춘 생물실 등 실험실만 20여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400여대의 컴퓨터에 태양열 에너지 실험실, 천체 관측을 위한 돔까지 구축해 놓았다. 일본 4년제 공과대학 평균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과학 저널 네이처지는 이 학교의 장비 리스트를 `연구소의 경쟁상대`라고 설명했다.
장비 인프라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 과학 꿈나무를 육성하기 위해 이 학교 학생의 교육에 팔을 걷었다. `슈퍼 어드바이저(Super Adviser)`라는 직책을 맡고 있는 아키요시 와다 · 마사토시 코시바 · 아시마 마코토 도쿄대 교수와 아키도 아리마 일본과학재단 이사장, 해롤드 크로토 요코하마시립대학교 교수, 아키라 후지시마 도쿄과학대 교수 등 6명이다. 코시바 교수와 크로토 교수는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기업연구소와 출연연구소 등에서 30명이 넘는 과학자들이 `과학기술고문`으로 이 학교의 교육에 참여, `과학 토요일`로 정한 매월 첫 번째 주 토요일 강의를 하고 있다. 강의 주제는 주로 `거미줄의 신비`, `전자레인지의 원리` 등 일상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과학이야기다.
타케시 미야자키 요코하마 사이언스프런티어고교 교장대행은 “슈퍼 어드바이저나 과학기술고문들의 강의는 학생들에게 큰 영감과 자긍심을 준다”며 “지식을 전달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창의력이 원천이 되는 이러한 영감과 함께, 과학기술 꿈나무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이라 말했다.
일본에서도 유별난 과학학교인 만큼, 커리큘럼도 남다르다. 과기 분야 중에서도 특히 생명과학 · 환경과학 · 나노 · IT 분야에 중점을 맞추고 있다. 모두 일본의 오랜 경제적 침체를 벗어나게 만들기 위한 신성장동력이다. 1학년 때는 과학 전반에 대해서와 생물과학을 배우고 2학년에는 화학 · 물리 · 지구과학 · IT 등을 배운다. 3학년 때부터는 대학 진학에 필요한 공부와 함께 구체적인 전공을 정해 그 분야에 집중한다. 이와 함께 영어 교육에 많은 시간을 배정, `국제적 연구자` 배출을 위해 초점을 맞췄다. 일본인의 고질적인 발음을 고치는 소프트웨어를 갖춘 이러닝 영어학습실도 구축했다.
방학 때도 학생들은 쉴 틈이 없다. 이화학연구소 등 일본의 대표 출연연들을 견학하며 경험을 쌓거나, 자매 결연을 맺은 해외 고등학교를 방문해 교류의 시간을 가진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과학 리터러시`라는 교육 방식이다. 실제 생활에 과학적 관점을 주입하기 위한 교육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학교에 입학하는 1학년 학생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나 실험에 의한 수업이 아닌,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부터 공부를 시작한다. 이를 통해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를 키워나가는 동시에, 모든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는 데 있어 과학적 탐구의 자세를 가지게 만든다.
또 하나는 과학 융합 교육이다. 예를 들어 `환경`이라는 주제가 있다고 하면, 과학 교육시간 뿐만 아니라 국어, 영어, 수학 등의 시간에도 환경과학과 관련한 글, 영어지문, 수학 문제 등을 풀어보는 식이다. 과학 교육이 과학 수업 내에서만 끝나지 않고 모든 학문과 융합한다.
이 학교의 연구실은 복도 쪽 벽면이 모두 통유리로 돼있어 밖에서도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다들 분주하게 실험을 하는 가운데 일부는 조는 학생도 있었고, 진지하게 생각에 빠진 학생도 보였다. “위험할 수도 있는 실험들을 외부에서도 모니터링 하기 위해선갚라고 물으니 미야자키 교장대행은 “학생들이 복도를 지나다닐 때도 과학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라고 답변했다. 요코하마 사이언스프런티어 고등학교는 일본 과학교육의 `희망`이자 `보루`로 불리고 있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