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 앞 트럭에서 한 다발에 몇 천원씩 하는 흔하디 흔한 과일. 껍질 벗겨 그냥 먹고 갈아 먹고 말려서도 먹는 과일, 바나나. 바나나에 뭐 그리 특별한 사연이 있을까.
우리가 아는 모습은 바나나라는 과일이 품고 있는 진실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먼저 바나나는 나무가 아닌 풀에서 열린다. 바나나 줄기는 세계에서 가장 큰 풀이다.
인류가 처음 정착해 경작할 때 택한 작물이 바나나라는 사실도 놀랍다. 또 가장 오래된 성경 번역에 따르면 에덴동산에서 이브가 먹었다는 금단의 과일도 사과가 아닌 바나나다. 바나나는 과테말라 민주정부를 전복시키기도 했다. 바나나업계 큰손들은 중남미 부패 정권과 유착해 온갖 특혜를 누리며 열대우림을 베고, 독성 농약을 무차별 살포함으로써 환경 파괴를 일삼았다.
저자는 무엇을 위해 오지에 직접 오가고 수많은 학술자료를 뒤지면서 바나나에 대해 광범위한 연구를 했을까. 그는 이 책의 목적은 `바나나 구출하기` 단 하나라고 말한다. 치명상을 입은 우리의 벗, 바나나가 현재 처한 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고자 동분서주했다는 것이다.
현재 바나나는 멸종 위기에 처했다.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은 마름병이 전 세계 바나나 농장을 파괴하고 있다. 파키스탄, 필리핀, 인도네시아를 거쳐 대규모 농장이 있는 아프리카에까지….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유전적으로는 형제라 할 만큼 거의 동일하다. 이 때문에 병 확산 속도가 빠른 것이다.
바나나 멸종 문제는 단순히 과일 하나가 지구에서 사라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우간다 등 아프리카 지역에서 바나나는 밀이나 쌀보다 더 중요한 주식이다.
저자는 “소비자로서 환경 파괴를 줄일 수 있는 유기농 바나나를 선택하고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치르는 공정무역 바나나를 고집한다면 세상을 보다 아름답게 바꾸는 올바른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주변의 대수롭지 않은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자세가 결국 세계를 바꾼다. 보다 면밀하게 탐구하고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동력이다.
댄 쾨펠 지음. 김세진 옮김. 이마고 펴냄. 1만5000원.
황지혜기자 goti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