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기술 못 뺏어가요

경기도에서 반도체 공정용 화학물질을 제조하는 A사 김 모 대표는 얼마 전 새로 개발한 물질 특허를 취득하려 했지만 짐짓 망설였다. 이걸 특허로 내놓으면 금방 기술이 공개돼 모방 특허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고민하던 그는 대ㆍ중소기업협력재단에서 운영하는 기술자료임치센터를 알게 됐다. 이곳은 주로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기업이 자사 고유의 기술을 대기업에 뺏기지 않고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곳이다. 김 대표는 결국 자사 기술개요를 담은 CD 파일과 USB를 이 임치센터 안에 마련된 금고에 보관함으로써 기술 탈취 걱정을 덜게 됐다.

중소기업청이 대ㆍ중기협력재단 내 기술자료임치센터를 통해 운영하고 있는 중소기업 기술보호 금고가 내년부터 대폭 확충된다.

2008년 당시 210개로 출발한 금고 수는 현재 400개에 이른다. 정부는 최근 이 금고 수를 내년까지 3000개로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중소기업 가운데 고유 기술을 개발하고도 대기업과 거래 과정에서 이를 빼앗기거나 특허 등록 시 어려움을 겪는 곳이 여전히 줄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박민식 한나라당 의원은 피감기관인 중기청에서 받은 자료를 통해 최근 3년간 국내 중소기업 2258개사가 기술유출 피해를 입었고 그 피해액도 4조2156억원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대ㆍ중기협력재단 건물 12층 10평 남짓 공간에 마련된 금고 보관실은 사설 보안업체가 용역을 맡아 보호하고 있으며 대ㆍ중기협력재단 직원들도 관리에 힘쓰고 있다. 금고 보관실은 총 5개의 안전장치가 마련된 문으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으며 해당 금고를 열 때도 대ㆍ중기협력재단에 분산 안치된 2개의 열쇠를 동시에 꽂아야만 열 수 있다.

중소기업이 자신의 기술을 임치센터에 보관하는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기술 소유권에 관한 법적분쟁이 발생할 경우 이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신욱 기술자료임치센터 과장은 "중소기업이 거래 대기업에서 기술 제공을 요구받으면 임치센터에 보관한 기술을 넘겨줄 순 있겠지만 중소기업이 기술을 미리 임치했기 때문에 향후 대기업이 해당 기술의 지적재산권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주장할 경우 그것을 깰 수 있는 강력한 근거가 마련된다"고 설명했다.

국 과장은 "임치센터 금고는 중소기업의 지적재산권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기 위한 국내 유일한 장치"라고 강조했다.

기술 임치를 희망하는 중소기업은 기술자료임치센터 인터넷 홈페이지(www.kescrow.or.kr)를 통해 신청한 후 센터 담당자의 기업 현장 실사를 받아 기술파일을 금고에 봉인ㆍ보관할 수 있다. 보관 수수료는 신규 신청일 경우 1년에 30만원이며 이후 1년 갱신 때마다 15만원을 내면 된다.

[매일경제 서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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