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양열을 바라보는 시선은 양분돼 있다. 국내에서는 태양열 활용이 쉽지 않다며 고개를 젓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반대로 태양열이야 말로 경제성과 효율 측면에서 가장 우수한 대체에너지라는 주장이 엇갈린다.
현재 국내 태양열 산업의 현황 또한 이러한 주장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소비자의 차가운 시선과 저조한 보급실적으로 시장에서 철수를 선언한 반면 또 다른 기업들은 정부지원과 소비자 홍보를 통해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유독 국내에서만 맥을 못 추고 있는 태양열의 미래는 불확실하기만 한 것일까.
◇잘나가던 태양열, 시들해진 이유는=출발은 좋았다. 보급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던 1990년 중반 태양열은 난방 및 급탕에 들어가는 가스 · 기름 값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는 대체에너지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95년 33만㎡를 시작으로 1997년 40만㎡를 뛰어넘었던 국내 태양열 집열면적은 1998년 8만㎡로 급감했다. 이후 지속적으로 보급이 감소하면서 지금은 전성기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1995년부터 일반 가정을 중심으로 보급된 태양열은 몇 년 동안 지속적인 인기를 누렸지만 같은 기간 동안 오늘의 위기를 맞이하게 한 불안요소 또한 잉태했다.
주로 겨울철 난방과 급탕에 필요한 열을 공급하는 태양열기기가 동파를 비롯한 잦은 고장에 시달리면서 사용자들의 불만이 속출했고 중소기업 위주로 형성된 업계가 이에 대한 대응을 적절히 하지 못하면서 신뢰를 잃었다.
무엇보다 일부 `먹튀` 업체가 시장의 물을 흐려놓은 것이 지금까지 태양열업계를 힘들게 하고 있다. 저가의 중국산 태양열온수기 제품을 수입해 태양열난방 · 급탕 겸용기로 허위 광고를 하고 판매한 업체 때문에 업계 전체가 피해를 입었다.
태양열 전문기업으로 등록된 업체는 100여개에 이르렀지만 자체적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10여개에 불과했다. 달리 얘기하면 대다수의 기업들이 중국산 제품을 수입해 국내에 유통했다는 말이 된다.
여기에 심야전기요금을 할인해주는 정부정책과 함께 심야전기온수기가 등장하면서 태양열온수기 시장은 초토화됐다.
이에 따라 한때 20여개에 이르던 가정용 태양열온수기 제조업체 또한 대부분 파산 또는 전업한 상태며 2008년 기준으로 2개 회사만 인증 제품을 소량 생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신재생에너지 중 태양열이 차지하는 비중 또한 미미하다.
2008년 기준으로 국내에 공급된 신재생에너지 원별 가운데 태양열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0.48%다.
상대적으로 보급이 늦은 태양광(1.04%)과 풍력(1.6%)이 전력생산에 활용되는 데 반해 발전부터 난방 · 급탕까지 가능한 태양열이 보급에 있어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2007년까지 태양열로 318ktoe를 공급해 태양광(301ktoe)보다 태양열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독일을 비롯해 일본 · 영국 · 미국 · 프랑스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태양열 보급량이 태양광을 앞서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유독 국내에서만 태양열의 보급이 미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태양광이나 풍력의 보급은 정부와 산업계의 활발한 지원과 관심으로 앞으로 급속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반해 태양열은 아직까지도 이렇다 할 모멘텀이 없는 상황이다.
◇해외에서는 각광=태양열의 높은 효율과 경제성에 대해서는 사실 이견이 없다. 태양열의 효율은 50%를 상회한다. 폐기물을 소각해 열을 생산할 수 도 있지만 원료비가 전혀 들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태양열은 열을 생산하는데 있어 가장 뛰어난 에너지원이다. 이러한 이유로 태양열은 일찍부터 전 세계 국가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신재생에너지원 중에서는 비교적 빠른 1970년대 말부터 터키 · 독일 · 일본 · 호주 · 이스라엘 · 오스트리아 · 브라질 · 스위스 등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됐다. 이후 스페인 · 프랑스 · 이탈리아 등 유럽남쪽에 있는 국가들이 신축건물의 일정부분을 신재생 히팅시스템이나 태양열로 보급하도록 하는 의무화 정책을 펼치면서 보급이 빠르게 확산했다. 최근엔 중국도 태양열의 새로운 신흥강국으로 부상했다.
2007년 한해에 새로 설치된 집열면적은 전 세계적으로 약 2830만㎡에 이른다. 이중 중국이 전 세계 시장의 약 75% 정도인 약 2300만㎡를 보급했으며 EU가 약 10% 인 283만㎡를 설치했다.
중국은 약 4000여개에 달하는 태양열관련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태양광과 더불어 태양열관련 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태양열 이용기술 개발 또한 일찍부터 시작됐다. 태양열 선진국들은 저온 분야의 경우 신소재 개발을 통한 시스템 저가화 및 대량생산화 · 고효율에 집중하고 있다. 또한 태양열 시장의 거의 8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주거건물용 태양열 시스템 부품, 즉 축열조를 포함한 여러 가지 부품의 일체화를 통한 콤팩트 제품의 상용화를 진행했다. 최근에는 중 · 고온 분야의 태양열발전 · 태양열 화학시스템의 응용 개발에도 연구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태양열 적용분야 중 집열 효율이 높고 생산단가가 낮은 온수급탕 및 난방분야에 가장 많은 기술개발 및 상용화가 이루어졌으며, 시장 형성도 주로 그 분야에 집중돼 있다. 태양열 적용 분야는 과거 태양열시스템만을 단순히 적용하는 수준이었지만 최근에는 다른 신재생에너지 또는 에너지절약기술 등을 포함한 제로에너지 타운 · 그린빌리지 · 제로에너지하우스 등과 같이 복합적용을 통해 적용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연구와 이를 통한 보급이 집중되고 있다. 또한 지역난방을 위한 대규모 태양열시스템 보급도 확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1987년 `대체에너지개발촉진법` 제정과 더불어 태양열에 대한 연구개발(R&D)을 본격화했다. 특히 2004년 본격적인 기술개발 및 보급추진이 이뤄져 태양열온수기 및 평판형 집열기 상용화에 성공했지만 성능 및 내구성에서 선진외국에 비해 다소 뒤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집열 및 온수 급탕기술은 상용화돼 가정용온수기 및 골프장 · 양어장 등의 급탕시설에 주로 보급됐지만 한정된 수요처에 보급이 집증되고 있어 품질향상을 위한 생산 · 평가 · 대규모시스템 설계기술의 확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단일진공관식 집열기는 최근에 상용화 돼 보급되고 있으나 이중진공관식 집열기는 중국에서 거의 전량수입 보급하고 있다.
◇태양열, 제2 전성기 온다=태양열시스템 제조업체인 S사가 강원도 지역에 보급한 설비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커다란 말썽을 일으키지 않았다. 특히 겨울철 가장 매서운 날씨를 자랑하는 강원도에서 이뤄낸 성과라 더욱 주목할 만하다.
이 업체의 사장은 “태양열시스템의 평균 수명을 보통 15년에서 20년 사이로 잡는데 큰 고장이 없다면 7년이면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다”며 “업계가 품질과 AS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알리면 태양열 시장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최근 우수한 기술과 안정적인 AS를 자랑하는 태양열기업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품질에 대한 논란은 점차 잠잠해 지고 있는 추세다.
특히 그동안 진행돼온 R&D 성과는 향후 태양열분야의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될 전망이다.
현재 평판형 집열기 · 단일진공관형 집열기 · 집열판 접합시스템 · 태양열 집광시스템 국산화 등 요소기술에 대한 원천기술 확보 및 실증이 완료된 상태다.
또한 태양열 집열기 및 온수기의 성능을 향상하고 신뢰성을 향상하기 위한 성능시험 시설 및 인증제도가 구축됐다. 평판형 집열기의 열성능 및 신뢰성 향상, 태양열 온수기의 신뢰성 향상, 단일 진공관형 집열기 개발 완료 및 상용화, 태양열 냉방시스템 실증 완료 등의 성과가 나온 상태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업계 관계자들은 태양열에 대한 신뢰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대규모의 시범사업이나 보다 적극적인 홍보활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태양열분야에 대한 정책적인 지원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는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태양광 · 풍력을 비롯해 지열 · 공기열 등 다양한 재생에너지원이 정부의 지원과 더불어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큰 관심을 받고 있지만 태양열 분야는 한편으로 밀리고 있고 그렇다보니 연구 인력 또한 다른 분야에 비해 부족한 상황이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