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계열사 임직원 담합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나섰다. 삼성은 20일 각 계열사 사장들을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삼성인력개발원으로 불러 오후 1시 반부터 밤 9시가 넘도록 워크숍을 했다. 해외 출장 중인 일부 계열사 사장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장이 참석했다. 바쁜 사장들을 한자리에 모아 8시간의 마라톤 워크숍을 강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날 워크숍 핵심 주제는 준법경영(컴플라이언스)이었다.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삼성이 연루된 담합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 법무팀 주관으로 공정거래 관련 법령과 법령준수 의무를 다시 한 번 환기시켰다. 대표적 담합 사례 등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일상적인 비즈니스를 하면서 경쟁 회사 임직원과 식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담합 모의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사실 등을 주지시켰다. 법에 저촉되는 일은 아무리 업계 관행이고 사소한 것이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각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사안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국내는 물론 해외법인도 철저하게 법령을 준수하도록 하자는 것이 이날 워크숍 결론이었다.
이번에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법령 준수에 나선 것은 담합 연루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14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과징금 175억원을 부과받았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초ㆍ중ㆍ고등학교에 시스템 에어컨과 TV를 납품하는 과정에서 LG전자, 캐리어와 가격 담합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해외에서도 삼성은 각종 제소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8월에는 미국 플로리다주와 뉴욕주 검찰이 삼성전자를 비롯한 LCD 제조업체 본사와 현지법인 등 20여 개 법인이 LCD 패널 가격을 담합했다며 관할법원에 각각 제소했다. 이에 앞선 올 5월에는 유럽연합(EU)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등이 반도체 가격을 담합했다고 판단하고 삼성전자에 벌금 1억4572만유로(약 2072억원)를 부과했다. 그러나 담합 사실을 제보한 미국 마이크론은 제재 대상에서 제외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집계한 `전 세계 국제카르텔 벌금 순위 현황`에 따르면 미국이 국제카르텔에 대한 단속을 강화한 1999년 이후 최다 과징금을 문 세계 10대 기업 가운데 삼성전자는 6위를 기록해 한국 기업으로는 LG디스플레이(2위), 대한항공(4위) 뒤를 이었다.
삼성 관계자는 "이번 워크숍은 앞으로는 담합을 철저하게 뿌리 뽑아 담합으로 인해 생긴 삼성 브랜드 이미지 실추나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막기로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삼성그룹의 법령 준수 강화 움직임은 최근 글로벌시장의 움직임과도 관련이 있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연합 캐나다 일본 등은 한국 수출기업에 대해 갈수록 철저하게 공정거래법을 적용하는 분위기다. 한국을 비롯한 주요 수출국 기업에 대한 단속이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아예 불공정거래 의혹을 살 만한 행동은 미리 철저하게 차단하겠다는 것이 삼성의 생각이다.
한편 이날 워크숍은 삼성 각 계열사 사장들이 모인 자리인 만큼 최근 사회적인 화두인 중소 협력업체와 상생협력, 동반성장 방안에 관한 의견도 주고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매일경제 김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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