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찰 제안에서 백전백승하는 비법은 없을까?
각종 프로젝트 수주에 죽고 사는 `영업맨`이라면 늘 달고 다니는 고민이다. 지난해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한국의 아랍에미리트연합국(UAE) 원전 수주도 `명품 입찰서`에서 비롯됐다. 물밑에서 사업을 진두지휘했던 이희용 한전 UAE원전 사업단장은 당시 △최단 공기 △최적 공사비 △최고 안전성이라는 고객의 욕구(needs)를 충족하는 총 8권 1800페이지 분량에 달하는 입찰서를 만들어 UAE 관계자들을 감동시켰다.
전문가들의 `제안 필승전략`은 무엇일까. 전태수 삼성SDS 수석 컨설턴트, 김유곤 전 삼성 에버랜드 기획유닛장, 이성희 LG엔시스 기술 부문장(CTO), 김용기 쉬플리코리아 대표(전 SK텔레콤 경영교육팀장) 등 제안의 귀재들에게 노하우를 들어봤다. 이들은 하나같이 “제안서야말로 사업 수주의 알파이자 오메갚라고 입을 모았다.
◇SWOT 분석부터 버려라= 이성희 LG 엔시스 CTO는 “제안서 기획에 기업들이 자사의 강점과 약점, 기회와 위협을 분석하는 SWOT방식을 활용하면 정작 고객의 욕구를 간과하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며 “SWOT분석으로 우리 기업이 가진 강점을 고객사에 내밀지만, 정작 고객사에게 해당 강점은 불필요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고객이 해결하려는 이슈를 먼저 파악한 뒤, 우리가 경쟁기업에 비해 해당 이슈를 잘 해결해줄 수 있다는 점을 알리는 게 명품 기획서 작성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제안서에 해결책을 담아라=이 같은 방식으로 제안서를 기획했다면, 이제 제안서에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담아야 한다. 2006년 전 세계 유수의 기업을 제치고 중국에 테마파크 경영 노하우를 수출한 김유곤 전 삼성 에버랜드 기획유닛장은 경쟁업체가 테마파크 경영 방식만을 담은 10페이지가 채 안 되는 제안서를 제출했을 때 160페이지에 달하는 장문의 보고서를 내밀었다. 그는 “중국은 대형 테마파크를 운영한 경험이 없어 자칫 손해가 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며 “경쟁업체들이 화려한 동영상 등 프레젠테이션을 포장하는 데 치중할 때 우리는 해당 테마파크가 개장하면 1년 내 관람객 수가 얼마나 증가하고 몇 년 내에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을 지를 실증적으로 연구한 데이터를 제시했다”고 말했다. 당시 중국은 에버랜드 측에 개장 후 연도별 기본 매출에 미달하는 결과가 나오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조건까지 넣어주길 요구했다. 그는 “우리의 데이터에 자신감이 있었기에 수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정을 사수하라=당시 에버랜드는 중국에서 사업을 발주한 지 한 달만에 160페이지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내용이 충실해도 데드라인을 맞추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김용기 쉬플리코리아 대표는 “균형 잡힌 제안서를 작성하려면 제안서 작성의 전체 일정을 관리해야 하며 핵심은 기획과 수정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획에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제안서는 전략적 초점이 흐려지고 고객의 니즈와 솔루션이 일치하지 않은 제안서를 생산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 개개인의 전문화와 역량강화는 물론이고 사내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전태수 삼성SDS 수석 컨설턴트는 “제안에 필요한 모든 절차와 지식을 내부 뿐 아니라 협력업체도 공유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면서 “사전에 우리의 역량을 부분으로 나눠 매뉴얼화한 뒤 제안서에 필요한 부분만 가져다 쓸 수 있는 작업을 항시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쉬플리코리아는 오는 25일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글로벌 제안에는 프로세스가 있다(Best proposals for Tomorrow)`라는 주제로 제안 비법 소개 세미나를 개최한다.
정진욱기자 coolj@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