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전 8시 30분 지하철 문이 열리자 족히 수백명은 되어 보이는 인파가 물밀듯이 쏟아져 나온다.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에서부터 캐주얼차림에 헤드폰을 끼고 있는 사람까지 서로 뒤섞여 마치 경주라도 하듯 수많은 고층 빌딩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향한다. 도로를 가득 메운 차량도 일사분란하게 각 건물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13만 벤처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 G밸리 라이프의 시작이다.
G밸리 직장인이라면 출근을 조금 일찍 하는 게 현명하다. 자칫 러시아워에 끼게 되면 지하철에서 역사를 나오는 데만도 한참이기 때문이다.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적어도 10분간은 역 안에서 꼼짝 못하는 신세가 된다. 이는 자가 운전자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끝없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출근 인파에 신호와는 상관없이 멈춰 서있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길게 늘어선 출근인파를 따라 G밸리인들의 업무 공간인 지식산업센터에 들어서면 또 한번의 난관인 `엘리베이터 전쟁`을 치러야 한다. 이 `엘리베이터 전쟁`으로 G밸리인들 사이에 “2 · 3층 직원들은 되도록 걸어 올라가세요”라는 무언의 공감대가 형성됐다. 최근에는 몇몇 회사가 자체적으로 출근시간을 9시 30분, 10시 등으로 변경하면서 상황이 좀 나아졌다.
한차례 출근전쟁을 치른 후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되는 10시 G밸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한 도시로 탈바꿈 한다.
과거 구로공단에서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다시 G밸리라는 이름으로 명칭이 바뀌는 동안 이 지역은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됐다. 이제는 지식산업센터라고 불리는 15층 높이의 빌딩이 100여개가 들어섰고 최근에는 20층을 넘나드는 첨단 건물도 들어서고 있다. 지식산업센터에는 수십개에서 많게는 100여개 이상의 기업이 벤처신화의 꿈을 펼치고 있다.
오전 업무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면 G밸리는 다시 활기로 넘친다. 출근길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는 무엇이든 30분 정도 일찍 시작해야 이득이다. 점심식사를 위해 12시에 사무실을 나서면 재차 엘리베이터 전쟁을 치른다. 식당 순번 대기시간까지 포함하면 12시 30분이나 돼서야 겨우 식사를 하게 된다.
식사를 마치면 동료들과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긴다. 뉴욕에 뉴요커가 있다면 G밸리엔 G밸러가 있는 법. 점심시간에 원두커피 전문점을 들리는 것은 이곳 직장인들의 일상이다. 덕분에 지식산업센터 별로 1~2개씩 입점한 G밸리 커피전문점은 항상 만원이다. 여기에 수시로 열리는 간이 연주회나 콘서트 등은 G밸리 점심문화의 또 다른 재미다.
점심시간이 끝나면 G밸리에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직장인들이 사무실로 떠난 거리에는 유모차를 끌고 삼삼오오 모여 산책을 즐기는 주민들을 볼 수 있다. 지식산업센터마다 앞터에 공원을 조성하다보니 직장인은 물론이고 지역주민들을 위한 쉼터가 제공되고 있는 셈이다. 건물 내 휴식공간에서 오후의 노곤함을 푸는 직장인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오후 5시가 넘어가면 퇴근 행렬이 시작되면서 도시는 다시 북적이기 시작한다. 서두르지 않으면 걷느니만 못한 교통지옥을 맛보게 된다. 6시 30분에서 7시 30분 사이는 차라리 차량 운전을 하지 않는 편이 좋다. 저녁시간 구로디지털단지역, 가산디지털단지역 등 지하철 역사 주변은 G밸리인들이 하루의 회포를 푸는 최고의 장소다. 수많은 맛집과 유흥시설이 몰려있는 이곳은 주말보다 평일 매출이 배 이상 높은 독특한 상권이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하지만 G밸리에는 아직 수많은 사람과 차량이 오고가며 절반 가까운 사무실의 불이 켜져 있다. 과거 공단 시절처럼 밤새 돌아가는 쿵쾅거리는 기계음은 이제 들리지 않지만 그 대신 13만명의 숨소리와 땀내음이 물씬 풍겨오고 있다. 이곳은 대한민국의 결코 꺼지지 않은 IT 벤처의 심장 G밸리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