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어떻게 21세기에 대변혁을 일으킬 것인가.`
지은이의 화두였다. 과학이 만들어 갈 미래 상황을 내다보는 것. 즉 `비전(Vision)`을 제시하는 게 집필 목표였다. 원제(VISIONS:How science will revolutionize the 21st century)에도 화두와 목표가 뚜렷하게 투영됐다.
지은이는 1997년 미국 뉴욕에서 `비전`의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론물리학자이자 1994년 `하이퍼스페이스(Hyperspace)`를 출간한 뒤 작가로서도 명성을 얻은 데 힘입어 `비전`은 많이 팔리는 책이 됐다. 특히 21세기를 앞둔 세기말이었기에 더욱 매력적이었다. 장래를 내다보는 게 쉽지 않되 새 천년을 앞두고 나름의 혜안을 갖고 싶은 사람이 많았으니까.
한국에는 2000년 5월에 옮겨졌다. 옮긴이의 뜻이었는지, 출판사의 요청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제목에 `2003`이 붙었다. 난데없이 웬 2003일까. 서기 2003년을 뜻하는 것인지, 2003개 비전을 말하는지, 2003년 후인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읽다가 놓쳤는지는 모르겠으나 `2003`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았다.
사실 지은이의 `비전`은 앞으로 100년, 그리고 그 너머(beyond)다. 그도 “과학과 기술의 무한한 미래에 관한 책”이라고 했다. 여러 예측 · 예언 가운데 일부는 2020년까지, 아니면 2050년에서 2100년 사이에나 실현될 것(14쪽)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따라서 과학기술 이해력과 문학적 감성을 적절히 버무린, 흔하되 조금은 그럴듯한 여러 미래 예언서 가운데 하나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라 짐작되는 것은, 지은이가 10년 동안 과학자이자 작가로서 석학 150여명과 회견하며 정리해낸 `비전`이어서다. 밑거름을 잘해 여러 내용이 깊고 넓은 데다 쉽게 읽힌다.
예를 들자면, 가까운 미래의 컴퓨터 편재 현상(53쪽)으로부터 2020년 이후 인공지능 컴퓨터 연구 혁명이 부를 인간에 대한 사고 체계의 변화(129쪽)까지다. 또 로봇공학이 양자역학을 만나 인간에게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등장하던 고민거리를 떠안길 수도 있을 과정이 술술 이어진다. “2050년 무렵이면 원시적인 감정, 음성 인식 기능, 상식을 갖춘 로봇들이 등장해서 인간과 지적인 상호작용을 할 수 있을 것(165쪽)”이란다. 분자의학으로 암(285~286쪽)을 이기고, 독감 · 에이즈(313~328쪽)까지 물리칠 수 있을 것으로도 보았다. 이어 노화를 조절하는 유전자를 발견해(366쪽) 늙는 것을 `치료`하고, 인간의 인간 복제까지 가능하리라는 과학적 근거(382~416쪽)를 따라 읽다 보면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그나마 “생체분자혁명은 우리에게 건강과 번영을 약속해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도덕적 원칙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는 분별을 잃지 않아 안도의 한숨이 절로 터졌다.
무분별한 생명공학이 그 얼마나 위험할지 느낀 뒤에는 우주였다! 화성 탐사(508쪽)를 넘어 태양계 밖 생명체가 깃들 수 있는 행성 찾기(52쪽)로 나아갔다. 아예 우주에 에덴동산을 건설할 것(528쪽)이라니 지구든 지구 밖 외계든 굳이 헤아릴 필요가 없겠다.
그런데 왜… 쪽을 다시 넘길수록 점점 두려워지는가.
미치오 가쿠 지음. 김승욱 옮김. 작가정신 펴냄.
국제팀장 e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