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중기 기술유출] <1> 벼랑에 내몰린 기업들

중소기업이 기술 유출로 벼랑에 내몰리고 있다.

천신만고 끝에 개발한 첨단 기술이 경쟁사에 넘어가면서 하루아침에 망하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기술 유출 기법은 갈수록 첨단화하는 반면에 중소기업은 여전히 무방비다. 기술 개발에도 벅찬 자본력으로 기술보호시스템 투자는 언감생심이다. 유망 벤처의 꿈을 하루아침에 짓밟는 중소기업 기술 유출 실태와 대안을 4회에 걸쳐 긴급 점검한다.



# 정보통신업체인 S사는 지난 2008년 세계 최초로 초박형 휴대폰 힌지(경첩) 기술을 개발했다. 하지만 독점공급계약을 맺은 파트너사가 기술을 빼돌리면서 연간 수십억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힌지 양산을 맡기로 한 K사가 다른 업체에 이 기술을 되팔아 부당이득을 취한 것을 알게 된 것은 1년 7개월이 지난 뒤였다. S사는 그동안 독점공급계약에 묶여 다른 판로 개척에 손을 놓은 상태였다. S사 관계자는 “동종업계 종사자의 제보로 뒤늦게 사실을 인지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됐다”고 토로했다.

# 전기전자업체 H사는 전자장비 검사측정기 응용 프로그램을 개발, 얼마 전 중국까지 진출했다. 한국보다 수십배 큰 중국시장에서 `차이나 드림`을 꿈꿨지만 현지 파트너가 핵심기술을 빼내가 동종 회사를 설립하면서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됐다. 지역사회 영향력이 막강한 현지 파트너에 거래처를 모두 빼앗기면서 결국 공장 문을 닫고 한국으로 철수했다. H사 사장은 “현지 업체의 지역사회 영향력이 막강해 아무런 법적 대응도 못한 채 한국으로 쫓겨났다”며 하소연했다. 중국업체에 핵심기술이 넘어가면서 국부도 고스란히 빠져나갔다.



중소기업 기술 유출 범죄가 갈수록 지능화하고 있다.

독점공급, 판로개척 등의 파트너십을 체결한 후 교묘하게 가로채는 수법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당장 기술은 개발했지만 양산이나 판매할 자금이 없는 중소기업이 쉽게 `미끼`에 걸려들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에 대한 주의에도 피해 사례는 갈수록 늘고 있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2009년 말 기준으로 최근 3년간 기밀정보 유출 피해를 경험한 중소기업은 14.7%에 달했다. 혁신형 중소기업은 16.2%로 기업 6곳 가운데 1곳이 기술 유출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기청이 지난해 8월 발족한 중소기업기술보호상담센터에는 1년 2개월 동안 상담건수가 무려 355건에 달했다. 기술보호상담센터의 상담조차 받지 않고 포기하는 사례까지 합치면 이보다 훨씬 많은 중소기업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장건오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 부장은 “기술 유출 피해를 당하면 이를 해결할 방법을 막막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며 “이제 1년 남짓된 상담센터의 상담실적이 355건에 달하지만 이것도 빙산의 일각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특히 해외진출 중소기업의 경우 기술 유출 빈도가 훨씬 높아 국부 유출과 직결되는 상황이다.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이 올 상반기 중국 산둥성 진출기업 1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28%가 피해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출 기업의 40%는 2회 이상 유출피해를 경험해 해외에서의 보안은 매우 취약한 실정이다.

사회적 약자인 중소기업이 기술을 거의 강제적으로 탈취당하더라도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포장디자인업체 J사는 대형 디자인업체 G사의 의뢰를 받아 11개월간 치킨포장 박스 기술을 개발한 뒤 특허청에 특허 출원했다. G사는 특허출원 사실을 알게 되자 무리한 단가 인하를 요구하는 한편 박스 포장기술을 약간 고쳐 제3의 업체에서 다른 박스를 생산해 납품받는 전횡을 휘둘렀다.

J사는 이 때문에 개발비 일체를 받지 못하고 박스를 납품하지도 못해 결국 휴업 상태에 빠졌다. J사 관계자는 “증거 입증이 어렵거나 시간, 비용상의 문제로 제대로 대응하기 힘들다”며 “특히 슈퍼 갑인 대형 거래업체의 심기를 건드릴까 두려워 덮어두는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중소기업이 기술 유출 사전 · 사후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지원체계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발족한 기술보호상담센터의 전문가 상담을 확대하는 한편 기술자료 임치센터에서 중소기업의 핵심기술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에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기청 보안시스템구축지원 사업을 받은 오토닉스 관계자는 “기술 유출은 당하기 전에는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지만 일단 벌어지면 매출 감소는 물론이고 최악의 경우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며 “기술보안시스템 구축 지원 사업 등도 중소기업을 단순히 보호한다는 시각에서 벗어나 가장 효과적인 중소기업 경쟁력 향상 방안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술 유출 신고 및 법률상담 유형

자료: 중소기업기술보호상담센터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