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와 인터넷 가운데 어떤 게 세상을 더 많이 바꿨을까.
이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인터넷`을 떠올릴 것이다. 이유는 다양하다. 세상을 초 단위 연락체계의 공간으로 만든 것이 인터넷인데다, 지금 불고 있는 `스마트 빅뱅`의 중심에는 웹 세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쁜 사마리아인들` `사다리 걷어차기` 등의 저작으로 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인터넷이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고 믿는 것은 착각이라고 단언한다. 장 교수는 그의 새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선진국이 인터넷에 매료되면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정보격차가 국제 문제화되고, 기업이나 자선단체, 개인 등이 개발도상국에 컴퓨터, 인터넷 설비 등을 보급하기 위해 돈을 기부하는 등의 행동을 조심스럽게 뒤집어 본다.
그는 개발도상국 아이들에게 노트북 컴퓨터를 한 대씩 마련해주고 시골 마을마다 인터넷 센터를 세워주는 것은 도움이 되긴 하지만 삶의 질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결론 낸다. 이유는 단순하다. 정보격차가 개발도상국의 삶을 바꾸기엔 이들의 기본적인 생활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차라리 우물을 파고, 전기를 넣어주고, 세탁기를 구입하도록 돈을 기부하는 게 이들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23가지 주제를 통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던 사안을 뒤집어 보자고 제안한다. 미국 경영자들의 높은 임금 체계,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 삼성에 좋은 건 한국에도 좋을까, 자유시장, 자본엔 정말 국적이 없는지 등 뒤집어 보는 주제에는 성역도 없고 경계도 없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장 교수는 강자의 논리를 알아야 눈뜨고 당하지 않는다고 강한 어조로 말한다.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득력을 높인다. 다양한 주제를 이리저리 뜯어본 저자는 “강자가 말하는 논리에 넘어가지 말자”고 말한다.
장하준 지음. 김희정 · 안세민 옮김. 부키 펴냄. 1만4800원.
이성현기자 argos@etnews.co.kr